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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새로운 한국을 향한 출발선에 서서

조회
72
등록일
2017-04-26

새로운 한국을 향한 출발선에 서서

21 세기 한국의 세계사적 위상과 좌표는 어디쯤인가?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매우 힘든 내우외환 상황에 처했다. ‘안보와 경제’의 더블 위기 속에서 ‘희망의 창(窓)’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벼락치기 대선 국면에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정치판 게임에 매몰되었고, 현재의 좌표와 미래로 가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밖으로는 세계사적 도전을 극복하고, 안으로는 헌정질서의 문란을 수습하면서 ‘좋은 나라,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2017년 한국, 무엇을 해야 하나?” 연재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국을 향한 출발선에 서서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 21 세기 한국의 세계사적 위상과 좌표는 어디쯤인가?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매우 힘든 내우외환 상황에 처했다. ‘안보와 경제’의 더블 위기 속에서 ‘희망의 창(窓)’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벼락치기 대선 국면에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정치판 게임에 매몰되었고, 현재의 좌표와 미래로 가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밖으로는 세계사적 도전을 극복하고, 안으로는 헌정질서의 문란을 수습하면서 ‘좋은 나라,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몇몇 사람은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동안 소박하나마 우리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 사회의 현실과 주변을 둘러보면서 거대담론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보다 합리적인 생각을 개진하고 대안을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2017년 한국, 무엇을 해야 하나?”를 화두로 삼아 개별 주제에 접근하였다. 이제 여기서는 지금까지 제출된 논의의 정리를 통해 기획칼럼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1. 동아시아의 격랑 속에서 한반도는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 위기’ 국면에 처했다. 그럼에도 주변 패권국가들의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으로 급박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위기의 최대 당사자인 우리 한국이 거의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엄중하고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봉착했다. 성일권은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미․중․일 국가주의 충돌에 직면한 한국 외교는 어디로?” 라는 글을 제출하였다.

트럼프 시대 ‘미국 우선주의’에서 촉발된 국가주의의 부활을 직시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주의의 충돌의 가운데에 놓인 한국의 딜레마를 짚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사드 배치가 결국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역설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차기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는 미·중 관계의 정상적 회복과 균형 외교의 복원임을 강조하였다.


2. 통일을 생각해보자! 하나의 건축물을 상정하여 통일을 지붕으로 보고, 통일 지붕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column)이 있다면, 이는 ‘북한변화, 국제협력, 국민지지’의 세 기둥이 된다. 각각의 세 기둥 모두 다양한 논의 사안(어젠다)를 포함하고 있지만, ‘국민지지’의 기둥 없이는 대북정책을 힘차게 추진할 수 없으며, 통일의 지붕을 떠받칠 수 없다. 국민지지 또는 국민합의는 우리 내부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규범과 가치를 서로 존중하는데서 찾을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북인식(대북관) 견해차와 남남갈등 극복이 최우선의 과제로 부각된다.

고경빈은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 현장에서 젊음을 불살랐던 숱한 고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평화통일을 향한 우리의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였다. 이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에서 다시 쓰는 출사표(出師表)”를 내놓았다. 부제로 ‘대북인식의 견해차와 남남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문하면서, “한국정치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차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시금석이다”는 명제를 도출했다. 그리하여 "대북관의 차이는 한국정치 토론의 종결자“임을 선언했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등 우리의 장래를 위해 지향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보다 대북관이 어떠냐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간편하고 최종적인 기준“ 아니었던가?

그는 평화통일의 길 앞에서 우리 모두에게 호소하고 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했던가? 다양한 대북시각,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궤도 위에 적어도 좌우 ‘두 개의 날개’의 가치와 역할을 긍정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이든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이든,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이든 그야말로 통일의 길 앞에서 독선과 아집의 세계관을 넘어서자는 말이다. 실천영역이든 이론·사상 영역이든 여기서부터 출발하자는,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출사표라고 하겠다.


3. 공정국가! 아무나 얘기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공정국가 수립은 정치인만의 책무라기보다는 사실상 공무원 즉, 고위공직자의 나날의 행위 영역에서 판가름 난다. 이재희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연령대(40대 후반~50대 초반)의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천 여 명을 대상으로 “공무원의 현주소를 묻는다” 라는 글을 제출했다.

막스 베버(M. Weber)가 정치인의 책임윤리를 물었다면, 이재희는 추상적 대상보다는 베버가 말한 근대국가의 ‘합리적 지배(관료주의)’의 근간인 한국의 고위공무원단의 공적 윤리와 공공성의 책임을 물었다. 그들의 갑(甲)질이 제도적 요인인가, 문화적·전통적 요인인가? 박근혜 전(前) 대통령 혼자서 국가를 이렇게 황폐화시켰는가? 이재희는 이 글을 통해 고위 공무원들이 어떻게 하면 ‘민주적’으로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민전체의 봉사자‘로서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뇌의 일단을 내비췄다. 그와 함께 정치인들이 이들 테크노크래트 그룹에 포획당해 온 현실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남겼다.


4. 헬조선!사람이 한 평생 살다가면서 우리 사회만큼 살기 힘든 나라가 있을까? 오죽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Hell Korea’라고 했겠는가? ‘세계 일등, 세계 꼴지’의 수많은 지표와 함께 국민절망 요인 가운데 우선 두 가지만 짚으라면, 주택과 교육 문제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윤해동은 한국의 교육 문제는 “‘미래세대’를 볼모로 삼은 정치인들의 ‘도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금번 대선 국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덜 익은 교육개혁 방안 제안 이외에, 정치인들의 ‘도박’마저 거의 실종된 모습이다. 대학이 “괜찮은” 인간의 판별 기준이 된 이처럼 부도덕한 사회에서 교육 포퓰리즘은 교육 난제의 무한 악순환을 낳았다. 교육이 학생, 학부모, 교사 등 모든 국민의 치열한 전투 현장이 되었고, 공교육을 황폐화시킨 사교육은 마침내 출산과 육아조차 포기케 만들었다.

윤해동은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와 ‘새로운 인간’” 이라는 글을 통해 왜 국가가 수능시험의 관리자가 되어야 하며, 왜 지금까지도 교육부가 존재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교육부 대신 ‘국가교육위원회’ 창설을 제안하면서, 그와 더불어 교육자치 강화와 수능시험 폐지를 적극 주장하였다.

‘봉숭아 학당’ 구조는 타파되어야 한다. 문자 해독과 국민 양성을 위한 근대적 교육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문해율을 높여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그는 교육혁명은 제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새로운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포커스를 맞춰야함을 역설하였다.


5. 우리 안의 차별성! 마치 우리 안의 파시즘처럼, 이 모습이 진정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아닌가? 우리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유럽의 우익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우려하고 있다. 이문영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하며, 이주자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은 우리에게 아직 강 건너 불인가” 라고 되묻는다. 이에 그는 “외국인 이주자 200만 시대, 좋은 이웃되기”라는 글로써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국 사회는 이미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문화의 터전일 수 없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인구통계’상의 다문화화와 한국인의 ‘실제적’ 다문화화 즉, 다문화 포용성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한국은 세계 47개국이 인정한 <모든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으며,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인종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나라임을 밝혔다. 더욱이 “한국식 다문화주의에서 ‘차이의 공존’은 그저 수사일 뿐, 실질적으로 그 본질은 강력한 동화정책이다”고 폭로했다. 나아가 “이런 차이의 근본 원인은 시민의 권리, 즉 시민권과 국적을 당연하게 일치시키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고정관념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나, 유럽의 반이민 정서, 한국의 차별적 다문화주의의 논리 속에는 국적과 시민권의 동일시, 시민권과 인권의 동일시가 초래할 수 있는 반인권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고, “이주노동자, 난민, 불법체류자, 무국적자의 존재와 그들의 열악한 현실은 ‘문명 속의 야만’을 생생하게 재현한다”고 고발하였다. 이에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이주자 문제의 핵심의제는 ‘이주자 시민권’이어야함을 역설하였다. 나아가 그는 “우리와 함께 일하고 삶을 꾸려가는 그들이 국적과 무관하게 시민과 인간의 권리를 더불어 누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하자” 라고 호소한다.

한국의 외국인 이주자들은 우리 사회의 변방인, 주변인, 그리고 동화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여기서 이문영은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들춰내는 한편, 이주자들이 우리와 함께 시민과 인간의 권리를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6. 한국은 ‘자살 공화국’이다. 자살 사망률은 오랫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해왔다. 전 연령의 자살률이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으며 특히 65세 이상의 노년층의 자살률이 (10만 명 당) 80명에 육박하고 75세 이상 자살률은 평균의 4배에 달한다. 이는 노인층들의 암울한 미래를 그대로 말해준다. 왜 자살하느냐고? 빚 때문에 자살한다. 대개의 경우 빚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다. 빚은 사람의 숨통을 죄거나 피를 말리면서, 마침내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경제적 자살(Econocide)‘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누가 이들을 밑도 끝도 없는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는가?

최배근은 “가계부채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뇌관이다. 이미 1,300조가 넘어섰다. 통계는 많으나 해법이 없다. 이에 그는 “탈공업화 함정과 박정희 경제시스템의 사망 그리고 채무노예의 해방”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처음이자 가장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이미 “2012년부터 수출과 제조업과 대기업의 성장률이 급락하면서 <수출-제조업-대기업 주도 성장 방식>인 박정희 경제시스템은 위기에 처한 가운데, 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앞서게 되면 부채주도성장방식, 즉 미래소득 끌어쓰기 방식은 지속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뒤늦게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 및 증가속도 관리에 나섰지만 가계부채의 질만 악화시켜 채무노예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고 비판하였다. 요컨대 가계부채는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시스템 실패’의 결과”라는 말이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새로운 경제체재로의 전환과 더불어 (상환 불가의) 가계를 일회성 차원에서 채무에서 해방시키는 방안이다.

‘한국판 양적완화’ 및 ‘중앙은행의 민주화’! 그는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수년 전부터 이 방안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주택담보대출 가구 중 원리금분할상환 능력이 없는 가구가 2015년 4월 기준 110만 가구가 넘고, 이들의 부채가 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배근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 출자를 늘리고, 주택금융공사는 희망 가구를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인수한 후 장기공공임대로 전환시키는 방안이 그것이다.
둘째, 서민금융정책이다. 한국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금리가 현재 0.5%~0.75%로 기준금리(1.25%)의 절반 수준이다. 중소기업처럼 가계 중에 신용도와 담보력이 취약한 취약계층의 자활을 위해 저금리로 금융이용 기회를 확대시켜주는 방안이 대안이라고 한다. 나아가 “현재의 금융시스템이 가계보다는 기업과 은행, 자산가와 고소득층을 위해 복무”하기에 ‘한국은행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셋째, 마지막으로 탕감이다! 이는 먼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소멸시효채권)은 금융기관 스스로 소각하고, 기타 신용불량자의 부실채권은 적정 가격으로 정부가 인수하여 소각시키는 방안이다. 정부가 초장기 저금리 채권을 발행하고 한국은행이 인수함으로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탕감을 ‘도덕적 해이’로 우려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는 상당히 부도덕한 얘기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재벌대기업에 IMF 구제금융을 비롯하여 수차례 천문학적인 특혜를 베풀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농촌지원금이나 농특자금은 농촌과 농민층에 대한 엄청난 특혜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채무의 늪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구하고 가족을 살리는 길이 일회성 탕감 이외에 다른 방안이 있는가? 모든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


7.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전략적 도발 vs 미국의 전략적 억제’ 구도 위에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기 싸움’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남북경협 얘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혜연(慧然)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북핵문제 하에서 남북경협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제언”을 제출하여, 남북경협의 돌파구 또는 새로운 모델을 찾고자 했다. 그는 핵문제가 먼저 풀려야 경협이 가능하다는 매우 ‘현실적인’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양자의 ‘병행론’과 ‘연계론’ 간의 대립을 넘어 새로운 인식 즉,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핵문제의 장기화 전망 위에서, 한반도 위기관리를 경협의 목표에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경협을 통한 위기관리’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특히, 기업 입장에서 단기간에 대북사업 리스크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새로운 모색’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그는 북한의 개혁개방과 대북 진출의 토대 마련을 위한 플랫폼 전략을 제시하였다. 중국 동북 3성의 접경지역을 타깃으로 생산과 물류의 복합 플랫폼 구축 방안이 지속가능한 경협 모델로 제안하였다. 경색 국면의 장기화는 우리의 숨통을 조인다. 어쨌든 남북경협의 새로운 모색이야말로 ‘미래로 열린 창’이라는 데에 혜연의 깊은 고뇌가 돋보인다.


♧ 대선 후 우리 사회는 정치적 안정과 평온 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혼란과 갈등이 드러날 소지가 크다. 양극화, 불평등, 일자리 문제의 해결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복지, 가계부채, 주택, 교육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탄핵 국면과 대선 과정에서 한동안 자제되었던 요구가 분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만나게 된다. 다시금 새로운 한국을 향한 출발점을 점검해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평화재단의 사업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평화재단 2017 기획칼럼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칼럼>

① 2017년 한국,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조 민 평화교육원 원장,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② 미‧중‧일 국가주의 충돌에 직면한 한국외교는 어디로?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③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에서 다시 쓰는 출사표(出師表) (고경빈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운영위원장)

④ 공무원의 현주소를 묻는다 (이재희 소통과거버넌스연구소 소장)

⑤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와 ‘새로운 인간’ (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⑥ 외국인 이주자 200만 시대, 좋은 이웃되기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⑦ 탈공업화 함정과 박정희 경제시스템의 사망 그리고 채무노예의 해방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⑧ 북핵문제 하에서 남북경협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제언 (혜 연 평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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