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미‧중‧일 국가주의 충돌에 직면한 한국외교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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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등록일
- 2017-03-30
미‧중‧일 국가주의 충돌에 직면한 한국외교는 어디로?
무능한 대통령이 남긴 갈짓자 족적의 후유증은 대외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차기 정권이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국정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권이 실타래처럼 꼬이게 만든 외교관계일 것이다. 특히 세계 두 강대국 G2로 대변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관계 속에서 박 정권의 성급한 한반도내 사드배치 결정은 동아시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전방위적 보복조치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전환기적 선거정국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는 속수무책이다.
미‧중‧일 국가주의 충돌에 직면한 한국외교는 어디로?
무능한 대통령이 남긴 갈짓자 족적의 후유증은 대외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차기 정권이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국정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권이 실타래처럼 꼬이게 만든 외교관계일 것이다. 특히 세계 두 강대국 G2로 대변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관계 속에서 박 정권의 성급한 한반도내 사드배치 결정은 동아시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전방위적 보복조치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전환기적 선거정국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는 속수무책이다.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발행인
칼 마르크스가 노동자 입장에서 국가소멸을 예언했지만,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지구적으로 ‘국가이익 우선’를 주창하는 국가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과거처럼 이라크나 쿠바, 북한 같은 폐쇄적인 국가들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자국 이익을 수호하고, 자국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에서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이해관계 충돌은 우리에게 혼돈과 딜레마를 한꺼번에 안겨주고 있다.
트럼피즘, 미 우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변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 등장이후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이라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가 불법 체류자 추방, 복지축소는 물론, 자신들이 주도한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와 보호무역 강화, 기존 동맹관계 재검토 등으로 불거져 국제사회가 바싹 긴장하는 상황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무엇보다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 경제와 관련이 깊다. 미국식 세계화가 외려 미 사회에 저성장과 함께 양극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면서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이들은 과거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부유함을 구가했던 지난날의 영광과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나 ‘미국 우선주의’를 구호로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피즘’이 저소득층 백인들을 겨냥해 폐쇄적인 ‘미 우선주의’ 경향을 띠면서 국가 개입을 경원시해온 공화당의 자유주의적 가치와도 배치된다. 트럼피즘은 선거시즌인 프랑스 극우전선(FN)의 안느마린 르펜,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스 등 유럽 극우정치인들에게도 유사한 영감을 주고 있으며, 특히 극우성향이 다분한 일본의 아베 정권에도 무모한 자신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미 우선주의는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의 오랜 미국식 지배질서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변이를 목표로 한다. 과거에 유엔(UN)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IMF, 세계은행, OECD,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국제기구 뿐 아니라 안보·경제‧문화‧기술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글로벌 표준이 된 미국의 규범과 질서가 ‘워싱턴 컨센서스’라면, 트럼피즘은 여기에다 미국의 이기주의적 이익을 더한다.
트럼피즘은 미국과 더불어 G2이자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중국식 모델, 즉 베이징 컨센서스를 빠르게 확산시켜가는 중국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월 17일,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다보스 포럼 기조연설에 나서,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매진해야 한다. 보호무역으로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금융위기는 과도한 탐욕과 규제로 인해 발생한다. 국가 간 투자 교류와 소통이 원활해져야 한다"고 말해 트럼프의 보호주의 및 미 우선주의와는 상반되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중국이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변화 협약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의 보호주의 및 반세계화 움직임에 대해 중국 최고 지도자가 국제무대에서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시 주석의 이번 연설은 관세·환경규제‧안보강화 등을 통한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공세에 대한 정면 반박인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 출범식에 보내는 준엄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시진핑 시대 중국이 트럼프 시대 미국과 격돌하는 과정에서 언뜻 베이징 컨센서스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식 시장경제의 가치와 워싱턴 컨센서스가 빛을 바래는 사이, 중국은 견고한 경제역량과 중국식 발전모델, 중국적 가치를 내세워 베이징 컨센서스의 대외 확산에 더욱 치중하는 양상이다.
오랜 우방인 미국과 새로운 친구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득실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보단, 미국의 주문대로 사드 배치를 너무 쉽게 결정함으로써 그 후유증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우리 기업들에게 온갖 경제보복 조치를 내리는 동시에, 중국인들 사이에 반한감정이 날로 높아지면서 한국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드배치 결정의 이유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을 들었지만 몇 달 내에 북한 상황이 별로 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무력시위는 이명박 정권에 이은 박근혜 정권의 억압적 대북정책에 상당부분 기인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거침없이 질주하는 중국의 위협
미국은 한·미·일 군사·안보 일체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추진해왔다. 미사일방어(MD) 통합을 통해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시키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핵심 아시아 전략 가운데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적 보복으로 인해 중국시장에 진출한 롯데 등 국내기업들이 낭패를 당하고 있고, 양국 간 수출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중국인들의 한국 내 여행이 제재를 받으면서 우리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중국의 감정이 마냥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면, 북한 핵 문제도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드 갈등은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이미 ‘한·미·일 대(對) 북·중·러’라는 신 냉전 구조를 강화시키는 양상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중국이 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을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사드 배치가 결국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역설을 낳는 셈이다.
그럼에도, 한·미 정부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진지한 대중국 협의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사드배치를 통해 한반도 및 아시아에서 자신의 전략적 이익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오해하는 듯 하며, 우리 정부는 중국의 반발에 사드 배치와 중국은 무관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과 중국의 상이한 관점이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한 한국은 양 측의 ‘동네북’으로서 계속해 보복 대상이 되기 쉽다. 중국에서는 전 방위적 경제제재를 당하고, 미국에서도 쉬운 상대로 평가절하되어 언제든지 통상압력의 희생양이 될 우려가 있다. 지금, 중국 측의 경제제재는 시작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과의 수교 25주년을 맞는 우리 정부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이를 위한 중국과의 협력정책,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균형자론, 이명박 정권의 신아시아정책 등 중국과의 호혜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 확장시키는데 노력해왔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서는 아세안과의 우호협력 강화를 위해 2009년 3월 한·아세안센터를 설립하고, 한·중·일 3국의 협력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2011년 9월에는 협력사무국을 서울에 설립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핵심국가 위상을 도모하려 했다.
우리 정부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점점 더 그 힘이 커져가는 중국과의 상호 이해와 호혜적인 협력이 없이는 우리가 아시아 핵심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 강화에 경제적 힘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신실크로드경제권)프로젝트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창설도 중국이 현금과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주변국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특히 중국판 ‘마셜 플랜’을 꿈꾸는 AIIB의 경우 현재 회원국 규모가 미국·일본 중심의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넘어섰다. AIIB는 70개 회원국을 확보하며 세계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다자개발기구로 자리매김했다. 이 규모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아시아개발은행의 회원국 67개를 넘어서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고도성장하는 중국경제의 ‘이웃효과’를 최대한 누려왔다. 그 결과 현재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중국은 우리 기업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적으로 주시해야 할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의 전략적 의도이다. 그것은 시진핑이 내건 중국몽(中國夢), 즉 과거 중국의 영광을 되찾고, 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라 할 수 있다. 중국과 주변국 간에 과거와 같은 조공관계의 지역질서는 아니더라도 중국 중심의 지정학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에게 있어 미국의 한국 내 사드배치는 중국몽을 실현하는데 장애물이자, 자국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정부가 5월 개최하는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60여 개국의 정상‧각료급 인사를 초청했으나 관련국 가운데 한국은 아직 아무런 초청을 받지 못한 것도 사드배치에 따른 고의적 홀대라는 시각이다.
차기정부의 과제-미·중, 한·중·일 관계의 회복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미국이 동아시아 미사일 방어(MD)의 일환으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여긴다. 이런 우려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중국이 사드배치를 추진해온 원초적 주체인 미국 대신에 상대적 약자인 한국을 겨냥한 점은 대국답지 않은 행위이며, 종국에는 중국 자신에게도 마이너스가 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전방위적 한국비토는 우리로선 더 이상 사태진정만을 기다리기에는 그 후유증이 크다. 중국이 사드배치가 자국을 겨냥한다고 여기는 만큼, 미국은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중국의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하며, 중국 역시 탈(脫)냉전 후 지금까지 새로운 동반자로 가까워진 한국에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직접 당사국인 미국에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차기정부도 미국과 중국 등 이해 당사국들에게 우리 현실의 특수성을 호소하고, 사드배치의 현명한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는 미·중 관계의 정상적 회복과 균형 외교의 복원이다. 그것이야말로, 동아시아 내 긴장을 해소하고, 나아가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의 해법을 찾는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성일권
파리8대학 정치학 박사. 파리 외교전략연구원과 런던 정경대(LSE) 초빙연구원을 지냈고, 동국대학교 초빙교수 및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를 거쳤다. 지금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 발행인을 맡아, 한국판, 영어판, 프랑스어판에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 지도>(공저), <책으로 읽는 21세기>(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의 석유 없는 삶>,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등이 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평화재단의 사업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칼럼>
① 2017년 한국,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조 민 평화교육원 원장,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무능한 대통령이 남긴 갈짓자 족적의 후유증은 대외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차기 정권이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국정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권이 실타래처럼 꼬이게 만든 외교관계일 것이다. 특히 세계 두 강대국 G2로 대변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관계 속에서 박 정권의 성급한 한반도내 사드배치 결정은 동아시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전방위적 보복조치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전환기적 선거정국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는 속수무책이다.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발행인
칼 마르크스가 노동자 입장에서 국가소멸을 예언했지만,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지구적으로 ‘국가이익 우선’를 주창하는 국가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과거처럼 이라크나 쿠바, 북한 같은 폐쇄적인 국가들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자국 이익을 수호하고, 자국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에서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이해관계 충돌은 우리에게 혼돈과 딜레마를 한꺼번에 안겨주고 있다.
트럼피즘, 미 우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변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 등장이후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이라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가 불법 체류자 추방, 복지축소는 물론, 자신들이 주도한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와 보호무역 강화, 기존 동맹관계 재검토 등으로 불거져 국제사회가 바싹 긴장하는 상황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무엇보다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 경제와 관련이 깊다. 미국식 세계화가 외려 미 사회에 저성장과 함께 양극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면서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이들은 과거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부유함을 구가했던 지난날의 영광과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나 ‘미국 우선주의’를 구호로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피즘’이 저소득층 백인들을 겨냥해 폐쇄적인 ‘미 우선주의’ 경향을 띠면서 국가 개입을 경원시해온 공화당의 자유주의적 가치와도 배치된다. 트럼피즘은 선거시즌인 프랑스 극우전선(FN)의 안느마린 르펜,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스 등 유럽 극우정치인들에게도 유사한 영감을 주고 있으며, 특히 극우성향이 다분한 일본의 아베 정권에도 무모한 자신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미 우선주의는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의 오랜 미국식 지배질서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변이를 목표로 한다. 과거에 유엔(UN)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IMF, 세계은행, OECD,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국제기구 뿐 아니라 안보·경제‧문화‧기술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글로벌 표준이 된 미국의 규범과 질서가 ‘워싱턴 컨센서스’라면, 트럼피즘은 여기에다 미국의 이기주의적 이익을 더한다.
트럼피즘은 미국과 더불어 G2이자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중국식 모델, 즉 베이징 컨센서스를 빠르게 확산시켜가는 중국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월 17일,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다보스 포럼 기조연설에 나서,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매진해야 한다. 보호무역으로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금융위기는 과도한 탐욕과 규제로 인해 발생한다. 국가 간 투자 교류와 소통이 원활해져야 한다"고 말해 트럼프의 보호주의 및 미 우선주의와는 상반되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중국이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변화 협약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의 보호주의 및 반세계화 움직임에 대해 중국 최고 지도자가 국제무대에서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시 주석의 이번 연설은 관세·환경규제‧안보강화 등을 통한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공세에 대한 정면 반박인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 출범식에 보내는 준엄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시진핑 시대 중국이 트럼프 시대 미국과 격돌하는 과정에서 언뜻 베이징 컨센서스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식 시장경제의 가치와 워싱턴 컨센서스가 빛을 바래는 사이, 중국은 견고한 경제역량과 중국식 발전모델, 중국적 가치를 내세워 베이징 컨센서스의 대외 확산에 더욱 치중하는 양상이다.
오랜 우방인 미국과 새로운 친구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득실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보단, 미국의 주문대로 사드 배치를 너무 쉽게 결정함으로써 그 후유증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우리 기업들에게 온갖 경제보복 조치를 내리는 동시에, 중국인들 사이에 반한감정이 날로 높아지면서 한국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드배치 결정의 이유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을 들었지만 몇 달 내에 북한 상황이 별로 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무력시위는 이명박 정권에 이은 박근혜 정권의 억압적 대북정책에 상당부분 기인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거침없이 질주하는 중국의 위협
미국은 한·미·일 군사·안보 일체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추진해왔다. 미사일방어(MD) 통합을 통해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시키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핵심 아시아 전략 가운데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적 보복으로 인해 중국시장에 진출한 롯데 등 국내기업들이 낭패를 당하고 있고, 양국 간 수출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중국인들의 한국 내 여행이 제재를 받으면서 우리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중국의 감정이 마냥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면, 북한 핵 문제도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드 갈등은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이미 ‘한·미·일 대(對) 북·중·러’라는 신 냉전 구조를 강화시키는 양상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중국이 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을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사드 배치가 결국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역설을 낳는 셈이다.
그럼에도, 한·미 정부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진지한 대중국 협의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사드배치를 통해 한반도 및 아시아에서 자신의 전략적 이익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오해하는 듯 하며, 우리 정부는 중국의 반발에 사드 배치와 중국은 무관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과 중국의 상이한 관점이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한 한국은 양 측의 ‘동네북’으로서 계속해 보복 대상이 되기 쉽다. 중국에서는 전 방위적 경제제재를 당하고, 미국에서도 쉬운 상대로 평가절하되어 언제든지 통상압력의 희생양이 될 우려가 있다. 지금, 중국 측의 경제제재는 시작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과의 수교 25주년을 맞는 우리 정부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이를 위한 중국과의 협력정책,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균형자론, 이명박 정권의 신아시아정책 등 중국과의 호혜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 확장시키는데 노력해왔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서는 아세안과의 우호협력 강화를 위해 2009년 3월 한·아세안센터를 설립하고, 한·중·일 3국의 협력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2011년 9월에는 협력사무국을 서울에 설립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핵심국가 위상을 도모하려 했다.
우리 정부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점점 더 그 힘이 커져가는 중국과의 상호 이해와 호혜적인 협력이 없이는 우리가 아시아 핵심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 강화에 경제적 힘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신실크로드경제권)프로젝트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창설도 중국이 현금과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주변국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특히 중국판 ‘마셜 플랜’을 꿈꾸는 AIIB의 경우 현재 회원국 규모가 미국·일본 중심의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넘어섰다. AIIB는 70개 회원국을 확보하며 세계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다자개발기구로 자리매김했다. 이 규모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아시아개발은행의 회원국 67개를 넘어서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고도성장하는 중국경제의 ‘이웃효과’를 최대한 누려왔다. 그 결과 현재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중국은 우리 기업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적으로 주시해야 할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의 전략적 의도이다. 그것은 시진핑이 내건 중국몽(中國夢), 즉 과거 중국의 영광을 되찾고, 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라 할 수 있다. 중국과 주변국 간에 과거와 같은 조공관계의 지역질서는 아니더라도 중국 중심의 지정학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에게 있어 미국의 한국 내 사드배치는 중국몽을 실현하는데 장애물이자, 자국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정부가 5월 개최하는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60여 개국의 정상‧각료급 인사를 초청했으나 관련국 가운데 한국은 아직 아무런 초청을 받지 못한 것도 사드배치에 따른 고의적 홀대라는 시각이다.
차기정부의 과제-미·중, 한·중·일 관계의 회복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미국이 동아시아 미사일 방어(MD)의 일환으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여긴다. 이런 우려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중국이 사드배치를 추진해온 원초적 주체인 미국 대신에 상대적 약자인 한국을 겨냥한 점은 대국답지 않은 행위이며, 종국에는 중국 자신에게도 마이너스가 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전방위적 한국비토는 우리로선 더 이상 사태진정만을 기다리기에는 그 후유증이 크다. 중국이 사드배치가 자국을 겨냥한다고 여기는 만큼, 미국은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중국의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하며, 중국 역시 탈(脫)냉전 후 지금까지 새로운 동반자로 가까워진 한국에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직접 당사국인 미국에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차기정부도 미국과 중국 등 이해 당사국들에게 우리 현실의 특수성을 호소하고, 사드배치의 현명한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는 미·중 관계의 정상적 회복과 균형 외교의 복원이다. 그것이야말로, 동아시아 내 긴장을 해소하고, 나아가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의 해법을 찾는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성일권
파리8대학 정치학 박사. 파리 외교전략연구원과 런던 정경대(LSE) 초빙연구원을 지냈고, 동국대학교 초빙교수 및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를 거쳤다. 지금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 발행인을 맡아, 한국판, 영어판, 프랑스어판에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 지도>(공저), <책으로 읽는 21세기>(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의 석유 없는 삶>,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등이 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평화재단의 사업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칼럼>
① 2017년 한국,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조 민 평화교육원 원장,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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