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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83차 전문가포럼

한일관계 대 남북관계의 딜레마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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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1-09-09

한일관계 대 남북관계의 딜레마와 해법

주제를 ‘한일 관계에 대한 남북관계의 딜레마와 해법’으로 잡은 의도는, 한일 관계와 남북관계가 결과적으로는 불가결의 양자 관계이며, 이 두가지를 통일적으로 보지 않으면 양쪽 다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나 남북관계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 갈등을 제대로 극복해야 하며, 이러한 갈등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9월 9일 오늘은 북한에서는 공화국 창건 기념일(1948)이다. 그보다 3년 전인 1945년 9월 9일은 조선 총독부가 미군에게 공식 항복을 했던 날이다. 조금 더 내려와 보면 36년 전인 1986년 9월 9일에는 일본의 문부 대신(교육부 장관) 후지오 마사유기라는 사람이 ‘한일 합방은 양국 합의로 이루어졌으므로, 일본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소사(小史)들은 이번 주제와 연관 지어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남기정 교수의 주 관심사는 한일, 미일 동맹과 일본의 평화운동 분야지만 한일 관계와 한반도 문제 전반에 대해서도 아주 날카롭고 유익한 견해를 갖고 있다. 특히 방법론적으로 정치, 사회 현상을 역사적, 구조적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평소 익숙하고 당연히 생각되는 것에 새로운 의미와 문제의식을 설정하는 데 유용한 도움을 줄 것이다. 

 

 

1부 : 한일 관계에 대한 남북관계의 딜레마와 해법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내가 일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사실 한반도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국제 질서 속에서의 한반도의 위치를 찾다 보니, 한반도와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일본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이 구조를 제대로 규명할 수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 당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풍부하지 못했고, 그 부분을 메꿔야겠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반도 문제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역할, 그리고 한일 관계 등 그동안의 연구주제들을 구조화해서 전달해 드리고자 한다.

 

주제를 ‘한일 관계에 대한 남북관계의 딜레마와 해법’으로 잡은 의도는, 한일 관계와 남북관계가 결과적으로는 불가결의 양자 관계이며, 이 두 가지를 통일적으로 보지 않으면 양쪽 다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나 남북관계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 갈등을 제대로 극복해야 하며, 이러한 갈등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이 제목 안에 들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한국 민족주의론 재고

 

한국에서 특히 민족주의는 거의 언제나 그자체로 옳은 ‘항진명제(tautology)’였다. 민족주의는 역사적인 구성물이며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초역사적 절대선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거대 전통’(윤해동)이라고도 한다. 20세기 전반기부터 지금까지도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존재해오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정의를 규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지만 여기서는 도구적 개념으로써 활용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구성된 한국 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역사적 구성으로서 한국 민족주의

 

한국의 민족주의는 19세기 말 민족국가 건설을 지상과제로 하는 정치 원리 및 실천 전략으로써 궤를 같이 하여 제시되었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정치적 단위, 단일 독립 국가를 영위하려는 주장이나 전략을 내셔널리즘, 민족주의라고 한다. 

 

근대 국제 체제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모든 개별 민족 국가는 대내적으로는 최고 주권의 확립을 위한 운동을, 대외적으로는 최고 주권보다 어떤 상위의 권력도 없다고 하는 ‘평등 주권의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불가분의 기본 요소이다. 

 

실천적 의미에서 민족 국가의 대내적 과제는 ‘근대화’ – 여기서 근대화는 정치, 경제, 사회적 근대화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 라는 슬로건으로, 대외적 과제는 ‘자주화’라는 슬로건으로 제시되곤 한다.

 

 

민족주의의 분화와 상승조합/상쇄조합

 

 

그런데 문제는 이 불가분의 두 요소가 사실은 분화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조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발 선진국형 민족주의에서는 대내적인 근대화 민족주의와 대외적인 자주화 민족주의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그림1) 그러나 제국주의 치하에서 식민지를 경험한 지역에서는 근대화를 향하는 민족주의와 자주화를 향하는 민족주의가 분열하고, 그것이 상쇄조합을 만들어서 그 질곡에 빠져 있는 것이 대체적인 역사적 현실이었다. 한국 민족주의의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민족주의의 질곡

 

‘강화도 조약’으로 흔히 알려진 조일수호조약 제1조에는 ‘조선국은 자주 지방(자주국가)으로서 일본 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고 되어 있다.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 조항을 통해 조선은 근대 국가 질서 속에서 자주 국가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아직 본격적인 근대화가 개시되기 이전이어서 ‘근대 없는 자주’, 즉 국제 질서 속에 자주국가로 등장했지만 아직 그 내용은 근대화로 채워져 있지 못했다. 

 

엘리트에 의한 갑신정변, 민중에 의한 갑오농민전쟁 등의 근대 개혁 운동들은 이러한 ‘근대 없는 자주’의 상태를 ‘근대적 자주’로 바꾸고자 하는, 자주화와 근대화의 상승 조합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는 청과 일본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여기서 외세에 대응하여 ‘반침략’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반봉건’이라는 과제를 제시한 갑신정변은 ‘반침략’이라는 과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으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어난 민중에 의한 변혁 운동인 갑오농민전쟁은 ‘반침략’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반봉건’이라는 과제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자 모두 내적 결함을 드러내면서 분열되고 말았다. 결국 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며, 이는 ‘자주 없는 근대’의 계기가 되었다.

 

자주화와 근대화가 상쇄 조합을 이루는 ‘그림2’에서, 1876년에 조선은 자주화(x축) 선상에 처음으로 점을 찍었으나 근대화 지수는 0이었다면, 1910년에는 반대로 근대화(y축)로 이동되면서 자주화는 0이 되어버린다. 결국 그 조합은 0이라는, 의미 없는 결과값을 도출하는 상황이다.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이것을 상승 조합의 민족주의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양자가 상호대립하면서 상호 부정하는 문제를 일으켰고, 그것은 한국 민족주의의 질곡으로 이어진다. 

 

기미 독립 선언은 국제 질서 속에서 자주 독립을 선언했음에도, 실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근대화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는 점에서 이 운동의 주체 세력은 자주화와 근대화의 상승 조합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의 신간회 등 대부분의 운동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소위 민족 개조론이나 자치론은 근대화 민족주의의 발로였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자주화의 부재 상태에서 일어났으며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주의 유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따라서 쉽사리 친일로 변질되는 계기가 내부에 이미 존재했다.

 

 

한국 민족주의와 일본 문제

 

그런데 ‘근대 없는 자주’도, ‘자주 없는 근대’도 모두 일본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는 일본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된다. ‘근대 없는 자주’였던 조일수호조약은 일본과의 조약이었고 일본에 대한제국이 병합된 1910년은 ‘자주 없는 근대’의 시작이었다. ‘일본에 대한 자주화’와 ‘일본에 의한 근대화’라는 딜레마에 빠진 한국 민족주의는 그래서 친일·부일과 반일·항일의 스펙트럼 상에서 운동을 하게 되는 운명을 진작 안게 된 것이다. 

 

일제 하의 근대화 민족주의에 반발했던 자주화 민족주의자들은 해외로 나가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한편 그것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일부는 도로 국내로 들어와서 근대화 민족주의자들인 조선 내 부일 세력에 접근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조선 내 근대화 민족주의 대(對) 해외 자주화 민족주의’라는 지리적 분화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 민족주의는 자주화 민족주의와 근대화 민족주의가 분열하고 상쇄 조합을 이루는 가운데 친일에서 항일까지의 스펙트럼 상에서 진자 운동을 전개하는 질곡의 운명에 빠지게 된다. 

 

 

한국 민족주의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해방 후에는 이렇게 구조화된 질곡에서 벗어나 다시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도, 북한에도, 그리고 분단을 거부하는 민족운동 세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해방 직후의 지리적인 분단으로 인해서 민족주의의 분열과 순화가 가속화된 측면도 있었다. 분단 정권의 출현은 자주화 민족주의의 순화와 근대화 민족주의의 순화로 이어졌고, 이 사이의 충돌이 한국전쟁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국과 북한 모두 민족주의의 지리적 분단, 그리고 자주화 민족주의와 근대화 민족주의의 상쇄 조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주화와 근대화는 민족주의라는 축의 양 끝에 달린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발표자료)이 두 수레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갈 때 진보하지만 양쪽이 반대 방향으로 어긋나게 돌아갈 때 민족주의는 진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한국 민족주의의 구출(또는 극복)은 자주화 민족주의를 무한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화 민족주의와 근대화 민족주의의 상승 조합의 창출’이며, 구체적으로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일 화해 프로세스’의 동시 진행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 둘은 지금까지의 논의의 연장선에서 볼 때 그 기원과 과정, 그리고 해결에 이르기까지 불가분의 문제인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기원과 북핵 문제

 

2018년부터 개시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기원을 저는 1988년 7.7 선언으로 본다. 이는 지구적 규모의 탈냉전을 배경으로 해서 동북아 냉전과 한반도 정전을 동시에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한반도 정전 극복 노력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으로 일정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한편 동북아 냉전 극복의 노력은 한소 수교 및 한중 수교로 결실을 맺었다. 

 

반면 북일 수교,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북한은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식했고 이는 북한 핵 개발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북미, 북일 수교와 북한 핵 개발은 불가분의 과제이다. 7.7 선언에 입각한 한반도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는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의 실패로 좌절된 것이다.

 

북일 수교 교섭은 이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싼 북미 교섭으로 전환되었으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90년대 중반은 제1차 핵 위기가 발발한 시기였고, 그것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에 두 번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개시되었다. 저는 그 기원을 1998년 한일 공동선언으로 본다. 한일, 북일, 남북 관계를 하나로 엮어서 생각한다면 1998년 한일 공동선언 이후 김대중 대통령 주도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들이 한반도-동북아 평화·화해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한일 관계 안정화의 선행을 기반으로 삼아 남북 화해 프로세스가 재개되었고 그 결과 북일 국교 정상화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것은 1998년 한일 공동선언, 2000년 남북 공동선언, 2002년 북일 공동선언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여기에는 동북아 평화 정립을 위한 3개의 기초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2002년 북일 공동선언 직후 납치 일본인 문제를 둘러싸고 북일 관계가 경직화되었고 북일 관계에서의 악화가 남북 화해라는 양화를 구축함으로써 결국 1998년에 시작되었던 한반도-동북아 평화·화해 프로세스도 좌절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베 신조 등장의 배경이 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본의 위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궁극적으로 한반도 정전 체제 극복을 목표로 한다면, 정전 체제를 낳았던 한국전쟁을 통해서 일본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숨은 행위자였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한국전쟁은 정전이라는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일본이 동북아 정전 체제에서 숨은 행위자이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또는 강화조약)이 낳은 냉전 체제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만든 정전 체제는 불가분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만을 해결해서는 다른 하나가 해결되지 않는 동시에 해결돼야 할 과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 일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러한 구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 정전 협정 즈음, 일본에서는 이러한 보고서를 만들고 이후 일본 외교의 기초로 삼았다.(발표자료) 즉 정전 협정으로 조선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통일 정권 출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일본의 외교를 구상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도 일어나기 어렵지만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분단의 지속’이 한반도의 장래임을 기초 전제 질서로 하여 일본 외교는 지금까지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변화할 조짐을 보일 때 일본이 얼마나 크게 당황을 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탄생했을 때 2017년 아베 정부의 외교 브레인들이 모여서 작성한 정책 제언서 가운데 한국 관련 부분은 그 문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너무 급하게 일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미국과 협력하면서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일본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일본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가 아주 단적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제대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본을 염두에 두고 신경 써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미대화와 일본

 

이후 북미 대화가 전개되는 가운데 일본 외교의 동향을 보면 2017년의 정책 제언서가 어떻게 실질적인 정책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볼턴의 회고록에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2018년 3월 백악관에서 정의용 안보실장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브리핑을 한 이후로 아베 총리가 물러날 때까지 아베 수상과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30차례를 만났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난 셈이다. 더구나 한반도에서 급격한 변화나 어떤 진전이 있을 때마다 전화로든 직접 급하게 찾아가든 정상회담을 가졌고 외상 회담을 포함한 실무 라인의 만남은 더 잦았다. 그 외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도 논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 문제를 환기하는 외교를 일본은 매우 정열적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우리는 보통 무역 전쟁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나, 이 또한 실상은 2017년 정책 제언서의 내용이 정책화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즉 오사카에서 G20이 있은 직후인 6월 30일에 판문점에서 트럼프,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의 3자 회동이 열리자마자 일본이 들고 나온 것이 수출 규제 조치였던 것이다. 이는 이른바 대법원 판결로 인해서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이 수출 규제 조치로 전환되어 나타났던 것이기도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이러한 거대한 지정학적 변동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탑-다운 방식으로 추진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탑-다운 방식으로 전개된 미일 관계 강화로 이렇게 좌절되었던 것이다.

 

 

북일관계 개선의 출발점, 북일 공동선언

 

그렇다면 남북 관계와 동시에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염두에 두면서 궁극적으로는 북일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북한과 일본이 직접 마주하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일 관계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2014년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맺어진 스톡홀름 합의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스톡홀름 합의 5주년 즈음인 2019년 5월은 북일 관계가 매우 유동적인 상황으로 막 들어선 시기였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하노이 회담 이후로 점차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일본이 움직이려 했던 시점이다. 

 

그때 일본에서 나왔던 발언이 ‘스톡홀름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인데,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스톡홀름 합의가 2002년 북일 공동선언의 의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은 ‘북일 공동선언에 입각해서 한국, 북한과 일본이 관계 정상화에 나아갈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북일 공동선언은 이후 여러 가지로 그 선언에 위반되는 행동들을 일본, 북한 양측이 해 왔기에 거의 사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쪽에서는 그 의미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북일 공동선언의 배경이 된 2000년 남북 공동선언 또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의 의미 역시 여전히 유효하며, 그 연장선에서 북일 공동선언에 입각한 북일 화해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한일 관계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그리고 북일 관계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이다. 미래의 구도는 한국이 구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정작 한일 관계는 현재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장기 저강도 복합 갈등’의 한일관계

 

일본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정전 체제의 극복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큰 구도 속에서의 한일 관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한일관계의 현 상황을 ‘장기 저강도 복합 갈등’ 상황으로 정의해 보았다.

 

한일관계 악화는 국제적 수준에서는 미중 전략 경쟁 상태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양국 관계 수준에서는 대칭화와 수평화가 일어남으로 인해서 한일 관계가 국제무대에서 경합하는 보통의 양자 관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국내 정치 수준에서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가 가속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진보 정권의 출현으로 상호 인식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배경이다. 

 

미중 전략 경쟁 격화 속에 한일의 전략적 경쟁이 개시되어 있기 때문에 갈등은 저강도로 진행되지만 복합적이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로 한일 관계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한일 국력의 수렴 : 대칭화와 수평화

 

세계 경쟁력 연감, OECD가 발표한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 국가 신용등급, 또는 군사력 순위에서 양국이 엎치락뒤치락하다 최근에는 한국이 일본을 앞질러가는 양상이다. 경제적인 국력에 더해 소프트파워에서도 한국이 상당히 선전할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일본을 앞서고 있다. 영국의 잡지 ‘모노클’은 2020년 12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일본을 제치고 독일에 이어서 2위로 평가한 바 있다. 또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하여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인덱스에서는 2017~2019년, 그리고 최근까지 한국이 조금씩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정치 참여의 기회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민주주의의 회복력, 문화 발신력, 경제적 수치 등 종합적 국력에서 한일 관계는 점점 대칭화, 수평화되고 있다.  

 

‘한국이 이제는 일본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서서히 생기면서 한국인의 대일 콤플렉스 역시 상당히 극복되고 있음 또한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국이 일본보다 선진국인가’라는 질문에 ‘일본이 선진국에 가깝다’라는 답변이 2019년에는 50%였으나, 2020년에는 1/3 정도로 줄었다. 반면에 ‘한국이 선진국에 가깝다’라는 답변은 17%에서 31%로 증가했다. 한국인의 1/3은 한국이, 1/3은 아직은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중견국 멘탈리티가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중견국 멘탈리티와 중견국 외교

 

중견국 외교가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된 지는 이미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학계를 넘어 국민적인 배경을 가지고 시도해 볼 수 있는 실천적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대일 외교를 어렵게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이제는 일본과 대등해졌으므로 일본에 대하여 원칙을 견지해서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으니 양보하지 말자’는 논리가 일본에 대해서 타협하거나 현실적인 외교 선택지를 제시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한국의 소프트파워와 이에 입각한 중견국 외교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실질적인 중견국 외교 구상을 적용해야 한다. 즉 한국의 변화한 국제적 위상에 조응해서 대일 외교의 기조도 기존의 투트랙 외교에서 벗어나 일본을 끌어들이는 중견국 외교를 지향해야 된다는 것이다. 

 

중견국 외교란 예컨대 캐나다, 호주, 독일 같은 나라가 지향하는 외교이다. 즉 거대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자를 끌어들여서 만든 제도 자체에 힘을 부여함으로써 그 안에서 자기의 이익을 확보하는, 다자주의와 제도주의를 기본으로 삼는 외교이다. 

 

문재인 정부의 기존 대일 외교는 과거사 문제는 관리하고, 경제와 안보 협력은 유지한다는 소극적인 투트랙 접근이었다. 이에 비해 중견국 외교는 일본에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역할을 부여하고, 동아시아의 다자적인 협력 질서 속에서 동반자로 삼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적극적인 외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한편 역사 문제에서,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일본의 일방적인 양보와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중견국 외교의 기조를 벗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가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약소국 외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가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역사 부분에서나마 강대국 일본의 자그마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 비해 이제는 일본이 뒤쳐지고 있다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일본 국민들은,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일본에게 원칙을 강조해서 일본의 원칙을 굽히게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견국 협력을 넘어 ‘중도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외교를 제안한다. 그 목표 또는 지향점으로서, 불교에서는 중도, 유교에서는 중용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 왔던 중(中, middle)을 생각해 보자. 

 

 

중견국의 외교, 중도외교

 

중견국이란 초강대국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파워를 가지는 중간 규모의 국가이다. 개도국, 약소국과 선진 초강대국을 연결하는 위치의 국가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나 전략적으로 대결하는 강대국 사이의 완충 지역에 있는 국가가 이 둘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한때 교량 국가, 교량 외교라고 이해되기도 했다. 

 

이런 것을 지향하는 것이 중견국 외교라고 한다면, 중도 외교란 ‘중도’를 선택지로 하는 외교이다. ‘중’이란 둘 사이의 중간이 아니라 양극으로부터의 이탈, 새로운 선택지의 제시, 모순과 대립의 극복을 의미한다. 중도, 중용은 결코 가치 상대주의가 아니며 절대적인 존재나 가치에 대한 부정 또는 불신에 입각한 것으로, 중도 외교란 ‘존재론적 상대성에 대한 깨달음을 기초로 불교의 연기(縁起)의 세계관의 인드라망으로써 국제 관계를 인식하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연기의 세계관은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수와 진보의 질곡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우리의 대일 외교는 중도 외교를 실천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도 외교의 정의와 내용

 

국제 정치, 외교 용어로 중도 외교는 ‘신독(慎獨, prudence)’ 또는 ‘시중(時中, timeliness)’으로 개념화되고 있다. 적절한 시간을 확인 또는 만들어내는 외교를 견지하는 것이다. 양극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 또는 시기 중 정곡을 찌르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항상 긴장되어 있어야 하는 외교이다.

 

중용의 국가들은 사상의 집적소가 되어서 문명 간 교량 국가로서 인류 문명을 새로운 차원으로 선도해 나가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한때 국제법을 태동시킨 네덜란드가 그러했듯 새로운 개념, 질서, 이념, 사상을 만들어가는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관계성과 상황성을 고려한 집중과 선택의 외교’(최상용)이다. 따라서 중도 외교는 국익 추구 행위로서의 전통적 외교 개념에서 더 나아가 다름의 확인과 조정, 중용의 최적해 도출, 현실 가능한 최선을 찾는 행위로서의 외교로 그 개념과 내용이 달라진다.

 

 

‘위안부’ 문제의 해법과 ‘중도 외교’

 

예컨대 위안부 합의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중도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왔던 흔적이 나타난다. 즉 공식적인 합의임을 한편으로는 인정하면서도 피해자 중심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입장을 견지했다. 상당히 모순되는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중도의 외교를 고민하여 노력한 듯하다. 사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의 대법원 판결 문제는 정치, 한일 외교의 문제인 동시에 피해자가 있으므로 피해자 중심 접근의 문제이기도 하고 역사, 사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방향성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피해자 중심 접근의 원칙’에 대한 최적해를 도출하는 대일 외교가 필요하다. 

 

입체적 구성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초기작품 중 하나인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사물에 대한 복합 관점을 하나의 평면 위에 구성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해법은 처음에는 기괴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감동이 시작된다. 대일 외교의 해법도 이와 같다. 어떻게 보면 기괴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인 것이다.

 

강제징용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게 된 것은 한국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흔적이 배경에 있기도 하지만 국제법상 가장 첨단의 판단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은 법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판단과 첨단의 해법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해법은 어찌 보면 이렇게 아주 생소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거사 해법의 액션 플랜을 단계별로 만들어 보았다.

 

 

과거사 해법 액션 플랜

 

'행동 대 행동 ' 1 단계: '2015년 합의’의 재전유


일본의 가해 사실 인정과 진정어린 사과

일본의 법적 책임의 완수

진상규명과 기억계승, 역사교육 등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여성인권평화재단으로 ‘평화의 소녀상’의 이전

2015년 합의의 재전유

 

'행동 대 행동 ' 2단계: '식민지 지배 불법성’ 확인과 화해


1965년 체제의 한계를 확인

일본의 ‘국제법 위반’론 취하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의 재확인으로 식민지의 강제성을 확인

일본제철의 사실인정과 사죄 및 위령행사, 기념비 건립

한일의 기업과 시민사회의 출연으로 기금 조성, 배상을 실시

 

*일본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한국의 선제적 독자적 조치로 배상을 실시, 사법부 판결은 강제집행으로 완료.

 

'행동 대 행동 ' 3단계: 제2의 한일공동선언 채택


식민지 지배 불법성의 확인과 실질적 배상 완료의 확인

'과거에서 미래로’의 원칙의 확인 ᅠ

 

 

지정학의 파탄과 지질학 시대의 한일관계

 

흔히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지정학 역시 항진명제(tautology)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정학시대의 한일관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써 파탄을 알렸다. 그 전 단계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있었다. 

 

코로나19 대응은 시간이 정치의 주제로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그것은 어떻게 빨리 확진자를 찾아내서 빨리 격리하고 빨리 치료하는가 하는 ‘빠름’의 정치, 그리고 팬데믹을 지연시키는 ‘지연’의 정치였다. 또 현재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고 있는 이유는 바이러스의 빠른 변이 때문인데, 이 또한 ‘바이러스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경쟁’이다. 결국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인류세(Anthropocene)의 한일관계

 

이렇듯 인류 정치의 과제는 ‘공간’에서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배경에는 ‘인류세’라고 하는 커다란 자연의 시간이 있다. 그 속에서 지금은 지정학(地政學)이 아니라 시정학(時政學)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성숙 인류세(mature Anthropocene)를 이끌어가기 위해 성숙 사회(mature society)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19처럼 기후 변동의 결과로 일어나는 많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들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투트랙이 아닌 멀티트랙, 새로운 트랙을 만들어서 협력하고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이전의 트랙을 정상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이것은 어떤 부분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부분에서는 한일 연대가 이미 실현되고 있다. 바로 에코페미니즘의 세계인데, 새로운 환경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지역 시민단체들 간에는 현재 굉장히 활발한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또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번역되자 여기에 공감하는 많은 한국 여성들과 일본 여성들의 새로운 연대가 생기면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이 한일 관계 대전환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무대로 등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한일 관계의 돌파구는 바로 지정학에서 시정학으로의 관점 전환에서부터 가능하며 그것이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부 : 질의응답

 

Q. 분단으로 민족 국가가 미완성인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국가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런 분단 구조에서 세계 시민주의로의 전환의 실마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A. 분단 문제의 극복과 세계 국가로의 도약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분단 극복의 목표를 ‘민족 국가의 완성’이라는 협의의 목표로 설정한다면 아마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이 그것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류세라는 보다 거대한 시간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분단 극복의 문제가 풀려 갈 수 있다.
예컨대 ’남북이 하나가 되면 어느 정도로 우리가 경제 공동체가 커지고 거기에서 발전의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식의 문제를 던지는 게 아니라, ’탄소 중립을 위해서 남북한이 어떻게 협력을 하면 되는가‘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에는 아마 주변 국가에서 딴지를 걸거나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석탄 생산이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 문제라던가,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 나가면 다른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러한 공간에서 협력의 실적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문제는 분리해서 볼 문제가 아니라 같이 볼 문제다. 민족 국가 완성은 이미 목표로 적절하지 않다. 우리 민족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Q. 갈수록 국내에서 좌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중도 외교가 가능한가? 

 

A. 어렵긴 하지만, 중도 외교의 선택지를 내지 않는다면 이런 양극단의 대립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러한 담론을 제기하고, 거기서 실질적인 움직임들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대선 국면이다 보니 (대립 갈등이) 더욱 나타나는 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현실이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최근 책방에 가면 굉장히 새로운 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좀 낙관적인 생각이지만 지금의 특수한 시기를 벗어나면 가능성은 있다.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Q. 근대화 없는 자주화, 자주화 없는 근대화의 틀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시점이 강화도 조약과 한일 합방이었다. 우리의 근대화와 자주화의 시발이 일본의 힘에 의지한 측면을 지적해 주셨는데,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국제연합의 사무차장을 했던 일본 외교관 학자가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식민지의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것이 조선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합리화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좀더 우리의 주체적 역량이 들어간 시점이 더 낫지 않을까? 갑신정변, 갑오경장, 대한제국의 수립이 일본의 강압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차라리 이를테면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라던가 1948년 정부 수립 또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이런 쪽으로 우리의 자주화와 근대화 노력을 주체적으로 설명을 해도 교수님의 큰 그림에는 지장이 없는 게 아닌가?

 

A. 조금 전 국제연합의 사무차장이라고 했던 사람은 아카시 야스시라는 사람 아닌가 싶다. 일본 리버럴의 일반적인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제국주의가 정당한가‘에 대한 대답은 될 수 있겠으나, 우리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가 합법인가 아닌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법이 계속 거론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국주의 체제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던지고 있는 선두 주자가 어쨌든 한국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국제법 속에서 한 번도 제대로 던져보지 못한 질문들을 우리가 계속 던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 뜻대로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속상해하고 우리의 힘없음을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의 우리 위치를 생각해 보면 조금 자신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해도 되겠다. 그리고 완결되지 않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불법화를 처음으로 정식 제기해서 끌고 나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나중에는 상당한 동료 그룹이 국제사회 안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때까지 우리가 홀로 싸워야 되는가 하면 여기서는 좀 슬기로워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먼저 개척해 놓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다음에 후발 주자가 오는 걸 기다려보는 것도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지일 것이다. 국제법도 정해져 있지 않고 계속 변화 발전하기 때문에 보수 일각에서는 식민지배 불법화의 인정이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들 얘기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의 축에서 디지털 세계의 1 또는 0의 이진법이 아니라, 아날로그 세계의 80~90점까지 우리가 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위안을 삼을 필요도 있다. 
예컨대 전쟁의 불법화도 거의 300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세기 초반에 와서야 국제법적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금 미국에서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되어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듯 국제 사회학적 관점에서 세계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화도 우리가 시작해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많이 걸릴 것 같지 않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제기하는 게 사실은 쉽지 않은 문제다. 그것을 해방되자마자 제기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배경은 1919년 3.1운동과 임시 정부와 식민지 시기 하에 있었던 많은 운동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조국, 우리의 정부가 있다‘는 것을 체화한 이들 – ’국민‘으로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래서 일본의 지배가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인식론적으로 말하자면 인식이 있고, 개념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Q. 자주화 없는 근대화, 근대화 없는 자주화를 보수와 진보 진영의 생각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과거 80년대 학생운동 안에서 사회 구성체 논쟁을 할 때의 NL, PD 논쟁이 생각난다. 사회 구성체 논쟁에서는 NL이든 PD든 둘 다 진보 진영의 문제였는데 지금은 반봉건의 얘기가 빠지고 근대로 말씀하셨는데, 그런 차이를 구별할 틀이 있는지? 

 

A. 제가 보기에는 지금의 우리 보수나 진보가 사실은 자주도 아니고 근대도 아닌데, 상당히 왜곡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변증법적으로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겠다. 
’근대 없는 자주, 자주 없는 근대‘를 NL과 PD 논쟁으로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게 일본 강좌파(講座派)1)처럼 2단계 혁명론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근대가 있어야 자주가 있다, 또는 자주가 있어야 근대가 있다는 논쟁과도 맞물리는데 실은 자주와 근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민족을 완전히 넘어선, 사해동포주의까지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다 생각되지도 않지만 민족 정체성과 또 다른 정체성의 중첩이 가능하다고 본다. 제3의 어떤 새로운 가치를 내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Q. 1) 중도 외교의 개념을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또는 미중 경쟁 문제 등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예시를 들어주면 좋겠다.

     2) 곧 대선이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텐데 새 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일 정책을 포함한 외교 기조 부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A. 중도 외교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겠느냐는 질문 같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에 관여하는 여러 입장들이 있는데, 그 모든 입장에서 한 가지를 완전하게 구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게 최적해라는 것이었는데, 우리 정부의 그동안의 대일 외교에서 아쉬운 것은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사실은 외교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원칙을 세워놓긴 했으나 아무것도 대일외교에서 구현하지 못한 상황을 반성해야 한다. 또 외교로 구현한 것을 설명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고, 정부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다. 그 이유는 아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일본 쪽으로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 생각되는데, 우리 행정부의 규모나 능력으로 봐서 두 가지를 동시에 같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였고 전적으로 실천을 잘못한 문제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미중 경쟁에 대해서도 보수건 진보건 우리가 마치 선택을 해야 되는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미중 대립이 심각해질수록 그 사이에 제3의 영역이라는 간극도 생겨나고 있으며 그 틈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즉 국제질서의 분단 시나리오가 아닌 국제질서의 다극화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강대국 정치의 무대가 되고 있는 인도 태평양에서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모인 국가들에 의해 다자적인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전제하면 한국이 이 게임이 뛰어드는 것도 가능하다.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제3의 영역에서 우리의 외교, 즉 그간 이룩한 산업화, 민주화의 자산들을 배경으로 해서 함께할 수 있는 국가들을 엮어나가는 외교를 제시해야 한다. 
대선 후 새로운 정부가 지향할 대북, 대일 정책 역시 거기에 해답이 있다고 본다.

 

 

Q. 변화하는 문명의 시간을 새로 개념지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래를 보되 현재에서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한 듯하다. 중도 외교와 인류세 시간을 선도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고 그 출발점에서, 시민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나 예를 들어주시면 좋겠다.

 

A.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우리의 외교 방향과 시민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현대 외교에서는 그 주체도 다양화되고 있어서, 정부 간 외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중심이 돼서 새로운 네트워크와 질서를 만들 가능성, 예컨대 에콜로지 운동 같은 것들을 통해 새로운 파워를 가진 네트워크가 탄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 비핵지대(NWFZ)2)화의 경우에도 일본 정부가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평화헌법도 있다. 그런 영역을 네트워크로 이끌어서 면으로 만들어지고 거기에 일정한 힘이 모이게 되면 보수 우경화된 일본 정부에 대한 견제도 가능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부만이 아니라 개개의 시민들이 그러한 노력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Q. 북한의 반일 감정, 일본의 반북 감정은 한국의 그것보다 더 적대적인 성향도 있다고 보는데, 한국이 중재자가 되어 북일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그것을 지렛대로 남북관계 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구체적인 이니셔티브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A. 양국관계가 공히 전통적으로 실용주의가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일관계와 남북관계를 잘 운영한다면 둘은 결국 타이밍이 오면 서로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일본 쪽에서는 해결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는데 풀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도 보이고 있다. 상대국에 대한 반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북일평양선언 당시도 과연 가능할까 하는 분위기였으나 북한도 일본도 양자가 모두 크게 양보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 배경에는 실용주의적 마인드가 양쪽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본도, 문제적 현상이긴 하지만 아베 시대 이후로 수상관저에 파워가 실리기 시작했다. 수상이 결단하면 되는 정책적 구조로 가고 있다. 그것을 결단하도록 이끄는 외교, 그래서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1) 일본 자본주의 논쟁에서 노농파와 맞섰던 마르크스주의자 일파. 메이지 정부하의 일본 정체는 절대주의이며, 당시의 사회경제체제의 실태는 반(半)봉건적 지주제도라고 파악, 천황제를 타도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강행적으로 전환된다는 2단계 혁명론을 주창

2) 비핵지대(NWFZ : Nuclear Weapon Free Zone)란 특정 지역내에서 국가간 조약에 의해 핵무기의 생산, 보유, 배치, 실험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NPT상의 5개 핵 보유국들이 비핵지대 조약 당사국에게 핵무기 사용 및 위협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소극적 안전보장(NSA :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제공하는 핵 군축 방식이다. 해당 지역내에서 핵무기를 배제함으로써 핵전쟁 연루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이 목표로서, 성공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핵 보유국의 NSA 제공과 검증체제 구비가 중요하다.
비핵지대와 유사한 개념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가 있다. 이는 특정지역 또는 국가로부터 기존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정치적 선언 형식으로 발표된다(예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이 경우 5개 핵 보유국에 의한 NSA 부여는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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