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동북아 안보 환경
정치권은 외교·안보 기조만큼은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익만을 대변하는 일원화된 단일 메시지로 발신해야 한다. 내부의 단단한 결속과 고도화된 국방 자립만이 각자도생의 잔인한 동북아 역학 구도 속에서 우리의 영토와 안보 주권을 수호하는 유일한 열쇠다.
미국의 독단과 북한의 독설
최근 2개월(2026년 6월~8월) 동안 전개된 일련의 사태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한반도 방어의 핵심 축인 정례 한·미 연합군사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이고 독단적인 지시로 인해 당초 예정되었던 11일간의 일정에서 단 5일로 대폭 축소되어 2026년 8월 21일 조기 종료되었다.
8월 19일 백악관에서 가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최초로 공인하듯 발언했다. 동시에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며 공세를 취했으나, 미국의 전통적인 대북 원칙이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묵인하고 '핵 동결 및 감축 협상'이라는 거래적 타협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미국의 일방통행으로 인한 한·미동맹의 분열 우려라는 틈새를 북한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2026년 8월 19일과 20일, 연이틀 담화를 발표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했다. 8월 19일 담화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 조치를 "평할 가치가 없다"고 깎아내리면서도 "조·미 수뇌들(미·북 정상) 사이의 친분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언급해 북·미 직거래의 문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담화에서는 한국 정부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한국을 "상전(미국)에게 지휘권을 맡긴 허수아비 군대"라고 조롱하며, "서울은 제일 즐겨하던 '전쟁놀이' 판을 거두어야 하는 가긍한 처지"라고 수위 높은 비난을 가했다.
나아가 북한은 8월 20일 오후 5시경,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600mm 초대형 방사포(KN-25) 추정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무더기로 기습 발사하는 군사 행동을 단행했다. 김여정의 말 폭탄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며,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실질적 전술핵 능력을 쥐고 흔들겠다는 시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넘어 대한민국을 철저히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핵 군축을 협상하겠다는 북한의 전략 표출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UFS 연습 중반인 8월 19일 공식 입장을 통해 "한·미 연합 연습 축소를 통해서라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에 공감하고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코리아 패싱' 우려에도 불구하고, 평화체제 구축 과정을 위해 단기적 우려는 감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동북아 안보 질서의 재편 움직임
지난 몇 개월 동안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일들은 국가 간 정책적 불협화음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블록화 구도가 결합하며 발생하는 구조적 단층 균열에 가깝다.
우선 미국의 대북 비핵화 원칙의 형해화(形骸化)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57개'라는 구체적 수치로 밝힌 것은 북핵 통제의 기준선을 '폐기'가 아닌 '관리 및 동결'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시사한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확장억제(Nuclear Umbrella) 공약에 큰 변화를 야기한다. 만약 미국이 자국 본토를 직접 겨냥하는 북한의 ICBM 위협을 회피하기 위해 한국의 핵 인질 상태를 묵인한다면 한·미동맹의 결속력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서방 동맹의 균열선 반대편에서는 북·중·러 북방 삼각동맹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2026년 6월 2일, 러시아와 중국은 대외 공동 성명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의 경제 제재와 무력시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북한의 외교적 배후를 자처했다. 이어 6월 8일부터 10일까지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시 주석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여정에 진입했다"고 선언하며 결속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움직임은 더욱 호전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8월 13일, 자신의 26년 재임 기간 중 최초로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쿠릴열도(일본명 북방 영토) 이투루프섬을 전격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지에서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시찰하고 "쿠릴열도 지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정당한 결과"라며 러시아의 실효 지배를 과시하고 대러 제재에 동참한 일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당일 기자회견을 통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영토 도발"이라며 주일 러시아 대사를 초치하고 강력 항의했으나, 러시아 외무부는 "자국 영토 방문에 대한 뻔뻔스러운 간섭"이라며 거칠게 받아쳤다. 뒤이어 8월 14일과 15일 조국해방절(광복절)을 맞아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축전을 교환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최선희 북한 외무상에게 "다극화 세계질서 수립을 위해 한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 군사적 결속을 과시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영토 도발과 북·러 밀착을 둘러싸고 일본 외교가는 요동치고 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의 일본 정부는 즉각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기반한 '미·일 밀착'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일본은 미국의 안보 공약 재확인을 요구하며 가시적인 미·일 공동 군사훈련 확대를 제안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8월 16일 한·미 연합훈련(UFS)의 전격 축소를 단독 지시하고 거래형 외교로 선회하면서 외교적 딜레마에 봉착했다. 일본 안보 조야에서는 미국의 확장억제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는 '도쿄 패싱'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틈을 타 북한 당국은 일본을 향한 공세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북한 외무성은 8월 중순 관영매체 논평을 통해, 일본 다카이치 내각이 쿠릴열도 사태를 빌미로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 등 '일본의 군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북한은 이를 "과거 침략 세력의 군국주의 부활 책동"이자 "대동아공영권의 재현을 노린 무모한 군사적 대결 행동"으로 규정하며, 일본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한층 더 화약고로 몰아가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반면 8월 19일 방한하여 조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미·북 정상회담 중재 역할론에 대해 "북·미 간의 대화는 양국이 결정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중국은 한·미·일 공조 체제의 단층선을 정밀하게 탐색하면서도 직접적인 중재 리스크는 회피하고 있다. 북한이 급격하게 미·북 직거래로 경도되거나 러시아와 지나치게 밀착하는 것을 견제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통제하겠다는 계산된 행보로 보인다. 이처럼 북·중·러 3국이 안보 전선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각기 다른 결로 외교적 고립의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동북아 안보의 세 가지 시나리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 행보로 북·미 정상 간 물밑 접촉과 주변국의 촘촘한 외교 일정이 이어지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조만간 이루어지고 이것이 평화협정 체결 논의로 이어져 남북 관계와 한반도 안보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걸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쳐놓고 얘기한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미래는 대체로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 번째는 북·러 밀착을 지렛대로 활용한 '북·미 직거래형 핵 군축 타협'이다. 이 시나리오는 9월 1일부터 4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제11차 동방경제포럼(EEF)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가동된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협력 및 다각적 군사 협력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 기술 및 경제적 보상을 확약받고 고조된 지정학적 가치를 레버리지로 삼는다. 이후 11월 중국 선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마주 앉는다. 미국의 정치 일정과 맞물려 외교적 치적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를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대가로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 개발 중단 및 대기권 재진입 기술 동결 카드를 받아들인다. 중국은 주최국으로서 판만 제공하는 간접적 방조 형태를 취하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실질적 비핵화 없이 상시적인 전술핵 위협에 노출되는 완전한 '코리아 패싱'의 희생양이 된다.
두 번째 분기점은 미·중 갈등의 구조에서 나타나는 '통제된 긴장과 다자간 관망 구도'다. 2026년 9월 중 뉴욕에서 열릴 것으로 관측되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세의 거시적 조율이 이루어지고, 중국이 북한의 급격한 친미 경도를 우려해 물밑에서 제동을 거는 흐름이다. 김여정 부장이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호감을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실무진 간의 핵 사찰 검증 및 사후 담보 조건을 둘러싼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11월 선전 APEC 계기 정상회담이 무산되거나 가시적인 성과 없이 종결된다. 이 경우 북한은 8월 20일 감행한 KN-25 대량 발사와 같은 국지적 무력시위를 산발적으로 지속하고, 한·미 연합훈련은 축소된 상태를 유지하며 소강상태 속 탐색전이 장기화된다. 한국으로서는 외교 전략을 정비할 수 있는 전술적 시간을 벌게 되나 본질적인 안보 불안정성은 지속되는 결과를 낳는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동맹적 프로토콜을 생략한 채, 주한미군 감축이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카드를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 및 북·미 수교를 위한 거래의 부품으로 사용할 때 직면할 현실이다. 북한은 8월 20일 김여정 담화에서 표출한 공세 기조대로 한국 정부를 철저히 고립시키며 서해 5도나 NLL 일대에서 국지적 군사 도발을 감행하고 한국의 안보 취약성을 극대화한다. 이 지형에 도달하면 대한민국은 동맹의 확장억제 붕괴에 따른 극심한 남남갈등, 독자적 핵무장론을 둘러싼 국제적 고립, 그리고 미·중 사이의 외교 압박 속에 초유의 안보적 고립무원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다층적 역학 대응 방안
이처럼 냉혹하게 도출되는 안보 분기점들 앞에서 한국 정부는 전통적인 '동맹 지상주의'라는 외교 관성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동맹의 도덕적 선의에만 의존하는 외교는 주권 국가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전략적 자율성과 동맹의 실리성을 동시 확보하는 다층적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 행보에 대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감한 결단’이라고 환영했다. 현재의 판세와는 다른 행보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난 실리와 자율의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국력에 걸맞은 외교·안보의 지평을 넓히고 다층적 역학 구조에 대한 대응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외교 전략으로는 대한민국이 동북아 안보 방정식에서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에 대응하기 위한 전방위적 외교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거래형 외교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미국 상·하원 내 지한파 네트워크와 워싱턴 안보 싱크 탱크를 상대로 초당적 의회 외교를 집중해야 한다. "한국을 배제한 북핵 용인은 결국 동아시아 전반의 핵 도미노를 유발해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국익 논리로 미국 조야의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8월 19일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으로 확인된 중국의 정세 통제 심리를 역이용해야 한다. 한·중 고위급 안보 전략 대화를 정례화하여 북·러의 급격한 군사 밀착과 북한의 무모한 전술핵 도발이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 안정에도 심각한 위협임을 강조하고, 중국이 북한의 폭주를 제어하도록 해야 한다. 대러 외교 역시 물밑 채널을 전략적으로 유지하여 기술 이전을 차단하는 실리적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푸틴의 영토 도발로 인해 촉발된 러·일 갈등 및 미·일 관계의 엇박자를 주목해야 한다. 일본 다카이치 내각과의 안보 소통 채널을 가동하여 미국의 일방적 확장억제 무력화 조짐에 대해 공동의 '방어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되, 일본의 우경화·군사화 움직임과는 명확히 수위를 조절하는 균형 잡힌 외교가 요구된다.
다음으로 국가 안보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안보 사안에 대한 정치권의 단합이 필요하다. 8월 20일 김여정의 독설 담화가 노리는 본질적 의도는 한국 내부의 남남갈등을 촉발하고 정부의 안보 권위를 무력화하는 심리전에 있다. 정치권은 여야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동북아 안보 위기 초당적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외교·안보 기조만큼은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익만을 대변하는 일원화된 단일 메시지로 발신해야 한다. 내부의 단단한 결속과 고도화된 국방 자립만이 각자도생의 잔인한 동북아 역학 구도 속에서 우리의 영토와 안보 주권을 수호하는 유일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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