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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진단 332호

남북 간에 마이웨이를 그만두고 특수관계를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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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2
등록일
2024-07-20

남북 간에 마이웨이를 그만두고 특수관계를 회복하자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윤석열 정권의 헌법 중심론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규정한 남북 특수관계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수관계가 소멸되고 나면 남는 것은 각각 남북한의 자기중심적 인식과 냉전기의 적대관계다. 한반도 분단체제의 냉정한 현실은 통일시점까지의 잠정적 남북 특수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남북한 간 장기간의 공존과 협력, 그리고 대화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통일상을 그려가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2국가론과 대한민국 헌법의 충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남북을 교전 중 적대적 2국관계로 전환하고 남한을 최대의 주적이라고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헌법에 규정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과 같은 표현이 삭제되어야 한다며, ‘삼천리 금수강산’과 ‘8천만 겨레’가 남북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이라며 사용을 금지할 것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라고도 지시했다.


이후 북한은 남한을 향해 ‘대한민국’, ‘괴뢰 한국’, ‘한국 족속’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북한 애국가에서 삼천리 금수강산을 삭제하는 등 통일과 민족 관련 상징 지우기에 나섰으며, 대남기구를 정리하고 남북관계 관련 합의들을 폐지했다. 김정은 정권이 통일과 민족개념 지우기를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탈북민의 날’ 제정을 지시했으며,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1997년 7월 14일을 기념해 금년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는 고통 받는 북한 동포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폭정과 굶주림의 굴레에 가둬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대한민국을 찾는 북한 동포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 분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시기 발생한 북한 어민 송환사건 문제를 소환했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 출신인 태영호 전 의원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임명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북한 당국이 적대시하는 상징적 인물을 내세워 통일을 준비한다면 이는 우리만의 마이웨이일 뿐이다. 통일은 국제법상 독립국가인 북한이라는 엄연한 현실적 실체를 대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제외한다면 북한과 협력 없는 통일이 과연 가능한지 자문해볼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통일정책에서 헌법을 강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집권 직후인 2022년 7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통일부는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실현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부처”라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고,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헌법 3조와 4조에 따르면 북한 지역도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북한 체제라는 실체는 인정되지 않는다.


북한이 한반도 2국가론을 제기하고 헤어질 결심을 공식화한 데 대해 남한이 대한민국 헌법의 통일론으로 받아친 모양새다. 남북한 모두 상대를 제쳐둔 채 자기중심의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남북한 특수관계의 실종


남북한은 각각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유엔에 동시 가입한 국제법적 독립 국가이다. 따라서 유엔의 승인 없이 남북한의 군대가 상대방 지역으로 진주하면 국제법상 침략행위가 된다. 한편으로 북한 주민은 북한의 여권을 소지하고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지만 자의에 의해서 탈북 할 경우 자동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다. 국제법과 대한민국 헌법의 충돌이다.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는 이와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이었다. 1990년 전후 본격화된 냉전체제의 해체는 한반도 질서에 구조적 변화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도출된 것이 바로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이었다. 유엔 동시가입을 ‘2개 조선 조작책동’으로 비난하던 북한은 남한이 냉전기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던 소련과 국교를 수립(1990년 9월)하고, 중국과 무역대표부 설치(1990년 10월)에 합의하자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으로 냉전기 서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고 했던 주장의 의미는 희석되었으며, 공존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규정이 필요했다. 바로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한 배경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 따르면 남북은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평화보장과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는데 합의했다. 중요한 것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한이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이 통일시점까지 각자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면서 국가 간에 준하는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대통령 3명이 평양을 방문하고 여러 차례 국가 간에 준하는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남북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남북 특수관계에 대해 남북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윤석열 정권의 헌법 중심론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규정한 남북 특수관계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남북 특수관계가 소멸되고 나면 남는 것은 각각 남북한의 자기중심적 인식뿐이며, 남북관계는 상대를 쓰러트려야 끝이 나는 냉전기의 적대관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존을 위한 인식론적 전환


인권은 보편가치라는 점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탄압은 당연히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강경일변도의 정책만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에 산재한 탈북민을 국내로 안전하게 송환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조용한 외교 이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역대 정부 모두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했으며, 진보정권 시기에 국내 입국 탈북민 증가 추세가 더 가팔랐다. 역설적으로 윤석열 정부 시기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은 최저 수준이며, 북한 내부의 인권개선 징후도 찾기 힘들다. 오히려 김정은 정권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통해 인권탄압을 가속화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남북관계 순항기에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가 현재와 같이 심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우리는 이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중국과 서로 자동군사개입조항에 합의한 동맹관계이며, 지난 6월 북·러 간에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대한 조약’을 통해 준군사동맹으로까지 평가되는 관계를 맺었다. 핵을 가진 북·중·러 3국이 유사시 서로 군사개입을 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북한 체제가 동요하고 흔들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 주도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기대는 냉혹한 현실에 비추어 희망사항일 뿐이다.


김정은 정권은 민족 통일개념의 폐기를 선언했지만 전쟁 시 남한을 무력점령하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하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5위의 국방력, 그리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의 운명을 북한이 자기 방식으로 좌우하겠다는 것은 망상일 뿐이다.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장억제 역시 북한이 넘지 못할 벽이다.


한반도 분단체제의 냉정한 현실은 남북기본합의서가 규정한 통일시점까지의 잠정적 남북 특수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남북한 간 장기간의 공존과 협력, 그리고 대화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통일상을 그려가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부터 수천 개의 대북전단 풍선과 오물풍선이 남북의 하늘을 오가는 시대착오적인 풍선전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냉전기에나 벌어질 수 있을 법한 일이다. 남북 특수관계의 소멸로 인한 위협이 이미 일상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남북 특수관계의 상실로 인한 위험이 풍선전쟁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9.19군사합의를 전면 효력정지 시키고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했으며,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MDL) 인접지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동해선과 경의선 철로를 철거하고 지뢰를 매설하고 있으며, 비무장지대 내 대전차 방호벽을 서둘러 건설하고 있다. 남북 모두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남북한 간 군사적 채널은 물론 비군사적 차원의 소통 채널도 모두 단절된 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소한 문제도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힘을 통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역설일 뿐이다. 힘의 균형은 언제나 변할 수 있으며, 군비경쟁은 대부분 전쟁으로 귀결되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일이다. 북한의 위험한 무력시위와 도발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하되 당장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접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남북한 간 적대관계의 고착화를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적대관계의 장기화는 냉전의 추억을 소환하는 소모적인 고비용구조의 형성을 의미할 뿐이다. 북한 주민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현실적인 방법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것을 남북관계사는 증명하고 있다.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신뢰관계를 회복해 남북 특수관계라는 현실적 대안을 복원해야 할 것이다.


러·우전쟁의 장기화와, 중동 분쟁 등 글로벌 안보의 복합 위기 속에서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 대선에서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이 만들고자 하는 남북 적대관계를 우리가 받쳐주고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스스로 한반도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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