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패권경쟁의 바다가 되는가 -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과 중국의 동해 출로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북을 전후해 가장 주목해야 할 의제는 두만강이다. 연합뉴스는 6월 5일, 중국의 숙원사업인 두만강을 통한 동해 진출 문제에서 북·중 정상이 의견 접근을 이룰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7년 만의 평양행이 남긴 것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8일부터 9일까지 평양을 국빈 방문했다. 2019년 6월 이후 7년 만의 방북이자 올해 첫 해외 순방이다. 신화통신과 조선중앙통신이 6월 5일 동시에 발표한 이번 방문은 2025년 9월 전승절 80주년 계기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답방의 성격인데, 5월 14~15일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과 5월 20일 중·러 정상회담 직후에 이루어졌다. 4월에는 이미 왕이 외교부장이 평양을 찾아 사전 조율을 마쳤다. 시 주석이 미국, 러시아 정상과의 회담을 끝내자마자 평양으로 향한 이 시퀀스 자체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을 우회할 수 없다는 하나의 메시지다.
회담 결과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6월 9일, 두 정상이 고위급 왕래를 통한 전략적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고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조·중 관계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중 관계 발전을 “국가 제1 전략 사업”으로 삼겠다고 했고, 시 주석은 외교·법집행·군대 분야의 교류 강화를 언급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 시대 북·중 관계에서 군대 분야 교류가 공개적으로 언급된 것은 처음으로 파악된다며 관련 동향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의전은 2024년 푸틴 방북에 준하는 최고 수준이었고, 코로나19 이후 닫혀 있던 국경 통상구 10여 개의 전면 재개통이 합의되었다.
눈에 띄는 것은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자오퉁 선임연구원은 시진핑 주석에게 이제 비핵화 압박보다 평양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영향력의 보존과 확대가 우선순위가 되었다고 평가했고, 미국기업연구소(AEI)는 6월 9일 자 한반도 정세 분석에서 시 주석이 북한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인정함으로써 핵 인정과 제재 완화 요구를 암묵적으로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스팀슨센터의 레이첼 민영 리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의 군사 밀착, 핵 능력 고도화, 경제 개선으로 북한의 대중 레버리지가 2019년보다 커졌다고 분석했다. 한국 외교부 박일 대변인은 6월 9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유엔 안보리 결의로 확인된 국제사회의 일관된 목표라며 흔들림 없는 견지를 강조했지만, 베이징과 평양의 발표문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두만강, 다시 무대에 오르다
이번 방북을 전후해 가장 주목해야 할 의제는 두만강이다. 연합뉴스는 6월 5일, 중국의 숙원사업인 두만강을 통한 동해 진출 문제에서 북·중 정상이 의견 접근을 이룰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근거는 분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5월 20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1991년 중·소 동부국경협정 제9조에 따라 북한과 함께 두만강 출해(出海) 문제에 관한 3자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명시했다. 대만 연합보는 교량 상향과 강바닥 준설을 골자로 한 중국 측 개조안의 존재를 전했다. 핵심은 비용 구조다. 개조에 드는 돈과 설계·시공 인력의 사실상 전부를 중국이 떠안고, 북한과 러시아의 출자는 명목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실제로 다뤄졌는지에 대해 양국 공식 발표문은 침묵했다. 그러나 완전한 침묵은 아니다. 중국 외교부 6월 9일 정례 기자회견 기록에 따르면, 연합뉴스 기자가 전날 회담에서 두만강 출해 문제가 논의되었는지를 묻자 린젠(林劍) 대변인은 부인하는 대신 “관련 정보가 있으면 적시에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의제에 없던 사안이라면 통상 ‘보도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중국 외교부의 관행에 비춰 보면, 이 ‘부인하지 않은 비확인’은 논의의 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하는 답변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만강 하구의 지리 구도>

160년의 숙원이 깨어나는 조건
중국에게 두만강 출해는 160년 묵은 숙원이다. 청은 1858년 아이훈조약과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 내주면서 동해 연안 영토를 모두 잃었다. 중국 영토는 두만강 하구 약 17킬로미터 앞 방천(防川)에서 끝나고, 바다까지의 마지막 구간은 북한과 러시아가 마주 보는 국경이다. 1886년 훈춘동계조약으로 중국 선박의 두만강 항행권이 문서상 인정되었지만, 1938년 장고봉 사건 이후 소련이 통항을 막고 낮은 철교가 강을 가로지르면서 권리는 사문화되었다. 1991년 중·소 동부국경협정이 항행권을 재확인했고, 1990년대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지역개발계획(TRADP)과 그 후신인 광역두만강이니셔티브(GTI)가 이 일대를 동북아 물류 허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렸으나, 북핵 위기와 안보리 제재 속에 사업은 멈춰 섰다.
물길이 막히자 중국은 항구를 빌렸다. 2000년대 후반 북한으로부터 나진항과 청진항 부두의 30~50년 장기 사용권을 확보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듬해인 2023년 6월에는 러시아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내무역 중계항으로 쓰는 권리를 얻어냈다. 그리고 2024년 5월 중·러 공동성명에서 두만강 수로의 직접 통항 문제를 3자 협의 의제로 공식화했다. 여기서 한 가지 패턴이 보인다. 출로의 진전은 언제나 러시아가 약해진 국면, 곧 소련 해체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정확히 동기화되어 왔다는 점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의 대중 의존은 깊어지고, 양보의 임계점은 낮아진다. 중국에게 지금 역사상 최적의 기회의 창이 열린 셈이다.
중국의 차항출해 전략이 본격화된 시기가 시진핑의 국가부주석 재임기(2008~2013)와 정확히 겹친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시진핑은 부주석 취임 석 달 만인 2008년 6월 첫 해외 방문지로 평양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접견했고, 이듬해 국무원의 창지투(長吉圖) 선도구 비준과 나진항 부두 사용권 확보가 뒤따랐다. 동해 출로의 국가전략화는 그가 한반도 업무에 깊이 관여하던 시기에 닦인 노선이며, 2026년의 방북은 18년 전 자신이 놓은 포석 위로 되돌아온 행보인 셈이다.
<중국 동해 출로 추구의 160년>
군함은 두만강을 지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진이 있다
일본 지지통신은 6월 8일 두만강 하구 개발이 단순한 물류망 확충을 넘어 군사전략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분석했고, 일본 정부 주변에서는 군사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경계가 나온다. 그러나 이 대목은 정밀하게 따져야 한다. 두만강 개조 공사가 이루어져도 군함이 이 물길로 동해에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만강 하류는 갈수기 수심이 2~3미터에 불과하고 하구에는 모래톱이 발달해 있어, 준설을 해도 확보 가능한 수심은 4~5미터 수준이다. 중국 해군 호위함의 흘수만 6미터를 넘는다. 더 결정적인 것은 마스트다. 현대 군함의 레이더 마스트는 수면 위 25~40미터에 달해, 화물선 기준의 교량 상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에 동절기 3~4개월의 결빙, 양안이 모두 타국 영토인 17킬로미터 단일 수로라는 전술적 취약성, 그리고 1991년 협정이 보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업적 항행이라는 법적 한계가 겹친다. 두만강 개조가 만들어내는 것은 수천 톤급 화물선의 계절적 통항로이지, 함대의 출로가 아니다.
그렇다면 군사적 함의는 어디서 나오는가. 나진과 청진이다. 중국 군함은 이미 대한해협 등 국제 해협을 통해 동해에 진입할 수 있고, 중·러 양국 해군은 동해와 오호츠크해 일원에서 연합훈련을 거듭해 왔다. 문제는 진입이 아니라 지속이다. 동해에 보급 거점이 없는 중국 함정은 천 킬로미터 이상을 돌아 모항으로 복귀해야 한다. 나진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이고, 중국은 이미 부두 사용권을 쥐고 있다. 비전투함의 친선 기항에서 시작해 훈련 계기 보급, 정비·보급 계약의 상시화를 거쳐 거점화에 이르는 경로가 열려 있는 것이다. 두만강 준설과 교량 공사로 중국의 인력과 표준이 나선 일대에 상주하게 되면, 급유 시설과 안벽 같은 민·군 겸용 인프라가 축적된다. 상업이 앞서고 군사가 뒤따르는 이 방식은 지부티와 캄보디아 레암에서 이미 검증되었다. 요컨대 두만강은 화물의 길이고, 나진·청진은 군함의 잠재적 거점이다. 중국의 동해 전략은 수로는 돈으로, 항만은 외교로 푸는 이원 구조다.
<나진·청진 거점화의 4단계 경로와 문턱>

북한과 러시아의 계산서
물론 거점화의 각 단계에는 문턱이 있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에게 동해는 군사주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동해안에는 잠수함 기지와 미사일 시험장이 밀집해 있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대형 수상전투함과 잠수함을 수용할 새 해군기지 건설까지 지시한 상태다. 외국 군함의 상시적 존재는 이 전략 자산에 대한 관측 창을 내주는 일이며, 자주를 내세우는 체제 담론과도 충돌한다. 러시아에게 동해는 태평양함대의 작전 종심이자 블라디보스토크 방어의 전면이다. 거부가 기본값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문은 조금씩 열릴 수 있다. 다만 단계마다 가격이 다르다. 친선 기항과 계기적 보급 수준이라면 식량과 에너지의 안정 공급, 통상구 정상화의 불가역화, 노동자와 관광을 통한 외화 수입 같은 경제 패키지로 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군수 거점의 상시화로 가려면 북한은 핵보유 지위에 대한 중국의 사실상 공인이라는 전략적 인정을 요구할 것이고, 완전한 거점화는 동맹 수준의 안보 재보증을 전제로 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그런 연루를 회피해 왔고, 북한 역시 그 정도의 밀착이 가져올 종속을 경계한다. 러시아의 셈법은 또 다르다. 전쟁이 깊어질수록 이중용도 물자와 에너지 시장, 위안화 결제망에서 중국에 기대야 하는 러시아는 상선 통항의 묵인까지는 내줄 수 있어도 군함의 접근은 별개로 다루려 할 것이다. 흥미로운 단서가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6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두만강 하구 자동차 교량을 2025년 4월 착공해 오는 6월 19일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이 다리가 선박 통항을 고려한 설계인지가 3국 합의의 진도를 가늠할 첫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일본이라는 변수: 평양의 새로운 카드
동해 출로를 둘러싼 게임에는 또 하나의 행위자, 일본이 있다. 북·일 사이에 납치자 문제나 국교정상화를 둘러싼 접촉이 재개되는 국면이 온다면, 북한에게 ‘중국의 동해 접근’은 그 자체로 대일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한이 나진의 문을 중국에 얼마나 열어 줄지는 전적으로 평양의 선택에 달려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북한은 도쿄를 상대로 몸값을 올릴 수 있다. ‘우리가 중국 해군의 동해 진출을 막는 마개’라는 포지셔닝은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보상과 외교적 양보를 끌어내는 지렛대가 되고, 거꾸로 협상이 막히면 중국 쪽으로 문을 여는 시늉만으로 도쿄의 셈법을 흔들 수 있다. 물론 이 카드에는 한계가 있다. 남발하면 신뢰가 잠식되고, 중국을 들러리로 세우는 순간 베이징과의 관계가 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일 관계가 악화될수록 카드의 액면가가 올라간다는 구조 자체는 분명하며, 북한이 중·러 사이에서 구사해 온 등거리 경매의 기술을 중·일 사이로 확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동해의 평화가 한반도의 평화다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보여준 것은 단일 사안의 타결이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다.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던 북한의 대외 포트폴리오가 중국 쪽으로 재균형되기 시작했고, 그 거래의 한복판에 두만강과 나진이 있다. 동해는 오랫동안 사실상 한·미·일 해군이 압도하는 바다였지만, 북·러 밀착에 이어 중국까지 제도적 발판을 얻는다면 주변부의 바다는 패권경쟁의 바다로 바뀐다. 38 North가 6월 6일 분석에서 짚었듯 북한은 대만과 일본 문제에서 중국 입장을 지지하며 의제를 선점했고, 다카이치 내각의 대만 발언 이후 최악으로 치달은 중·일 관계 속에서 중국의 동해 접근은 일본에게 배후가 정면이 되는 충격으로, 미국에게는 유사시 주일·주한 전력의 발을 묶는 변수로 다가온다. 중국이 유럽까지 20일 만에 닿는 북극항로 정기 노선을 연 마당에(신화통신, 2025년 10월), 두만강 출로는 동북3성과 북극항로를 직결하는 지경학적 결절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는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과장과 안심 사이에서 정확히 보는 일이다. 중국 함대가 두만강으로 쏟아져 나온다는 식의 과장은 분석의 신뢰를 깎고, 군함이 못 지나니 군사적 의미가 없다는 안심은 나진이라는 진짜 변수를 놓치게 한다. 감시해야 할 것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제도적 배선이다. 중국 비전투함의 첫 나진 기항, 군수지원협정류의 체결 움직임, 나선 일대의 급유·정비 시설 신설, 그리고 6월 19일 완공될 교량의 제원이 그 지표다.
둘째, 억지의 역설을 관리해야 한다. 북·중·러 결속을 재촉하는 가장 큰 동력은 세 나라의 내적 신뢰가 아니라 외부 압박에 대한 공동 인식이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군함 통과 시나리오를 부각해 방위력 증강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일본 일각의 유혹까지 겹치면, 위협의 과장이 다시 위협을 키우는 자기실현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한·미·일 협력의 강화가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이 3국 밀착의 문턱을 낮추는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도록 긴장 관리와 소통 채널을 병행해야 한다.
셋째, 경합의 공간을 관여의 공간으로 바꾸는 상상력이다. 두만강 개발이 어차피 진행될 흐름이라면, 1990년대 GTI가 그렸던 다자 협력의 기억을 되살려 한국이 배제되지 않는 틀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동해가 진영 대결의 바다가 되는 것을 막는 일, 그것이 곧 한반도 평화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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