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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79호

‘두 국가’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미루지 말자

조회
253
등록일
2026-05-30

‘두 국가’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미루지 말자

당분간은 ‘회색지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색지대에 머물게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두 국가’를 선택했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과연 어떤 입장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지 걸러내는 논의가 양성화 되기를 바란다.

8년 만에 방문한 북한 스포츠 선수단

 

지난 5월 17일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토너먼트 참가를 위해 남한을 방문했다. 북한 스포츠 선수단이 남한을 방문한 것은 2018년 12월 국제탁구연맹 대회 참석 이후 7년 5개월 만이다. 여자 축구단으로서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다. ‘내고향축구단’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5월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 위민’과의 준결승에서 2-1로 승리하고,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일본의 ‘도쿄 베르디 벨레자’를 1-0으로 꺾으며 최종 우승을 차지한 뒤 24일 출국했다. 

 

이번 방문은 북한이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방남이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남한에서는 최종적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부터 100만 달러의 우승 상금 때문에 결국 올 것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하게 제기되었지만, 결국 방남이 이루어졌고 10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따내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북한 선수단은 인천공항 입국 때 여권을 제시하며 입국심사를 받았다. 과거에는 사전에 통일부 장관이 발행한 ‘남한방문증명서’를 가지고 입국심사를 받았다. 남한에서 북한 방문 시에도 통일부 장관이 발행한 ‘북한방문증명서’를 가지고 북한의 입국심사를 받았다. 이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한 남북한 특수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관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한방문증명서’를 받지 않고 여권만 제시한 채 신분을 확인받고 입국하는 절차를 거쳤다. 남북 간 입국 시에 여권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가 된 셈이다.

 

북한 선수단의 냉랭한 태도는 예전에도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보여왔던 행동이었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반면 북한 선수단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민간 주도의 남북 공동응원단에 3억 원의 협력기금을 지원했고, 경기장에서도 홈팀보다 ‘내고향축구단’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이로 인해 자국 선수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우승 이후 기자회견 당시 ‘내고향여자축구단’ 단장은 ‘북측’이라고 표현한 기자의 질문에 정식 국호를 사용하라고 항의하며 기자회견장을 나갔다. 과거와 달리 북한이 ‘두 국가’를 개정된 헌법에 명시한 이후이기 때문에 단장의 행동은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과거에도 북측 방문단이 이와 같은 돌발적 모습을 보인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북한이 ‘두 국가’를 선언한 이후 최초의 남북한 접촉 사례이므로 향후 남북관계에 큰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됐다. 

 

 

개정 헌법에서 ‘두 국가’를 명문화한 북한

 

2023년 12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한 이후 남한 사회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초기에는 당시 북한의 대남 감정이 좋지 않아서 나온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원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북한은 다양한 공개 채널을 통해 ‘적대적 두 국가’는 바뀌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고, 시간이 갈수록 북한이 ‘두 국가’ 노선을 확고히 굳힌 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결국 북한이 2026년 3월 최고인민회의 15기 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했고, 최근 공개된 개정 헌법 전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개정된 북한 헌법을 분석해 본 결과 '사회주의'를 삭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과 비례해서, 지난 헌법(2019년 4월)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헌법 개정은 그 사회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쉽게 개정하지 못한다. 한국은 1987년 개정 이후 34년 만에 개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일본은 1947년 전후(戰後) 헌법을 도입한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하지 못했다. 반면 북한은 권력자의 지시에 의해 수시로 헌법 개정을 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있다. 더욱이 북한의 법체계상 헌법보다 상위에 노동당 규약이 있으며, 그 위에 최고 권력자의 의중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타 국가에 비해 헌법의 중요성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헌법 개정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왔다.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처음 명명한 1972년 헌법 개정은 김일성의 유일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특징을 보였다. 당시 미·소 냉전이 절정에 달해 있었지만, 동시에 미·중 간 데탕트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도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8년 ‘고난의 행군 시기’의 종료를 선언한 직후 이른바 ‘김일성 헌법’으로 개정했다. 김일성의 후광을 이용한 유훈통치를 알리는 개정이었다. 2008년 김정일이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공개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2009년, 후계승계를 위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김정일 사망 이후 2012~2016년 헌법 개정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과 김정은 위원장의 접목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었고, 2019년 개정은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뒤늦게나마 유훈통치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처럼 북한의 헌법 개정은 권력 승계와 맥락을 같이 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2026년 3월 헌법 개정 역시 북한 최고지도자의 위상변화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헌법 개정에서 뒤늦게나마 유훈통치의 기반을 마련한 이유는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 위상과 연관이 있다. 김 위원장은 이렇다 할 정치적 업적 없이 단지 김정일의 아들(백두혈통), 그것도 장자(長子)가 아닌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가 됐다는 불명예, 즉 권력 승계의 정통성이 없는 상태에서 권력을 이어받았다. 그만큼 김 위원장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급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선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첫 일성을 냈으며, 2013년 3월 당중앙 전원회의가 채택한 ‘핵무력-경제 건설 병진노선’을 내세웠다. 이후 행보는 핵무력 완성과 경제 건설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 집중됐다.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에는 경제 건설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이후 적극적인 대외관계 개선 행보를 보인 것도 결국 핵무력을 이용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2019년 2월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면서 김 위원장의 정통성 확보 노력은 난관에 봉착했다. 

 

김 위원장이 선택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든 책임을 남한에 떠넘기는 것이었다. 보수든 진보든 남한의 모든 정권은 북한을 붕괴시켜 흡수통일하려 한다는 것이었고, 미·북 관계 개선의 실패도 남한이 배후에서 개입한 결과라는 것이 북한의 판단이었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결국 김 위원장은 선대의 통일업적을 버리고 적대적 2개 국가론을 선택했다.

 

다른 하나는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였다.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장기전이 불가피한데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는 식으로 북·미 협상의 실패를 자인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경제 건설을 위해 개혁과 개방을 추진했다. 시장을 공식 인정했으며, 2019년 4월 헌법 개정에서는 ‘대안의 사업체계’를 대신하여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국가의 경제 운영 원칙으로 삼았다. 무역 계획을 완화하여 석탄을 비롯한 광산물 수출을 확대함과 동시에 이를 통하여 중국을 비롯한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성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하면 김정은식의 개혁·개방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경제는 시장화 진전과 함께 대외의존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은 급격하게 높아진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낮추는 것이었고, 2021~2025년의 국가개발 5개년계획의 핵심은 자력갱생력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코로나 팬데믹과 국제 제재의 강화는 북한이 자력갱생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완성, 2개 국가론, 자력갱생 강화를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해 주는 업적으로 내세우고 이를 헌법에 반영한 것이 이번 헌법 개정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정된 헌법은 김일성-김정일 유훈통치와의 결별, 김정은 업적의 법제화에 집중되어 있다. 

 

이 가운데 ‘두 국가’를 명시하는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서문에서 통일 개념을 삭제했는데 단순히 통일 개념만 삭제한 것이 아니다. 선대의 업적을 찬양하는 가운데 통일을 지향한 내용을 강조한 것이 지난 헌법의 서문이었다면, 이번 개정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잔재를 제거하고, 국가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했다. 특히 2019년 헌법 서문은 김일성-김정일 찬양문이라 할 정도로 선대의 업적을 나열했던 것에 비해 2026년 헌법은 인민대중 중심의 국가 정체성만 부각한 것이다.

 

제1장 정치 부문이 주목된다. 2019년 헌법에는 없던 1조 국호 규정, 2조 영토 규정 및 3조 공민 규정이 신설됐다. 영토는 ‘북쪽으로 중국과 러시아,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다’고 하여 처음으로 영토를 명확히 표현했다. 김 위원장이 2개 국가론을 헌법에 명기하라는 지시에 따른 핵심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적대적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점은 남한이 적대적 행태를 보이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과도 국가 대 국가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3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은 공화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역시 ‘두 국가’를 뒷받침하는 조항이다. 과거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자에 대해서도 북한의 공민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님을 명확히 한 것이다. 통일을 지향한다는 구헌법 제9조는 통째로 삭제했다. 

 

개정된 헌법을 보면 북한은 민족과 통일로 연결됐던 한국과 결별을 택하고, 분단 이후 80년 만에 독자 국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처음 ‘적대적 2개 국가’가 나왔을 때는 잠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개정된 헌법에서 명확하게 ‘두 국가’를 선택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두 국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

 

비록 일방적 주장이긴 하지만 북한의 입장은 명확해 보인다. 북한은 이미 과거 남북 간에 체결한 모든 합의를 무효화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였는데, 남한은 유지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이탈했다. ‘내고향축구선수단’의 방남 과정은 남북 간의 다른 입장이 서로 충돌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스포츠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한은 만날 수밖에 없다. 북측이 남측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 남측이 북측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에서 서로의 방문과 충돌을 풀어나갈 수 있는 사례가 누적되어 관행화됐는데, 북측이 이를 무시하면 남측만 일방적으로 지킨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북측은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한 반면, 남측은 여전히 특수관계 하의 휴전선이다. 만에 하나 소소한 군사적 충돌이라도 발생할 경우 과거와 다른 법적 판단과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게 됐다. 

 

무엇보다 80여 년간 통일을 지향해 왔던 남북한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번 수원종합경기장에서 벌어진 응원에서 그 모습이 드러났다. 이러한 혼란이 확산될 경우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쟁이 격화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통일지향성’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이른바 ‘회색지대’를 유지하며 그때마다 현실에 맞게 대응해 나가는 형태다. 통일부는 일단 남북한이 국가관계라는 부분은 제쳐놓고 ‘적대적’이란 북한의 입장을 지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우리 내부의 비난도 만만치 않다.

 

당분간은 ‘회색지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색지대에 머물게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정치권은 이 문제의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사회 전 분야에서 다양한 의견이 교환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이끌어 내는 우리 체제의 강점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두 국가’를 선택했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과연 어떤 입장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지 걸러내는 논의가 양성화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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