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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72호

전후 질서의 종언과 일본의 전환

조회
422
등록일
2026-02-14

전후 질서의 종언과 일본의 전환

이번 중의원 총선의 결과는 정책 평가가 주요인이라기보다 장기 보수화 흐름 위에 이미지 정치가 얹혀짐으로써 일어난 일종의 사건이다. 다카이치 1강 체제는 강력하지만 재정, 외교, 당내 통합이라는 제약 속에서 겨우 유지될 수 있다.

-2026년 중의원 총선이 보여준 ‘전략국가 일본’의 등장

 

전후 리버럴의 후퇴와 보수의 구조적 우위

 

 이번 일본 중의원 총선은 자민당 압승이라는 결과로 끝났다. 자민당 1강 체제가 부활했고, 다카이치 리더십이 확립되어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민당은 중의원 전체 의석 465석 가운데 3분의 2(310석)를 넘긴 316석을 확보해 단독으로 개헌 발의도 가능해졌다. 중의원의 17개 위원회 위원장도 독점하게 되었다. 여기에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가 확보한 36 의석수를 합치면 352석, 나아가 국민민주당의 28석, 참정당의 15석까지 합치면 395석이 되어 범보수 우익진영이 중의원을 장악했다.

 

 반면 리버럴 계열 정당은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중도 리버럴 진영 사수를 내걸고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합당해서 만든 중도개혁연합은, 산술적 계산과 달리 정치적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172석에서 49석으로 의석수가 크게 줄었다. 합당 과정에서 정책 정체성은 흐려졌고, 두 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노동조합과 창가학회 조직은 완전히 결집하지 못했다. 특히 입헌민주당은 안보법제와 원전 정책 등 핵심 쟁점에서 기존 입장을 조정하면서 지지층 내부에 혼란이 발생했다. 

 

 전후 오랫동안 일본에서 평화 진영을 구축해 온 사민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또 다른 평화헌법 옹호 진영인 일본공산당은 겨우 4명의 당선자를 냈을 뿐이다. 괴멸된 전후 리버럴 진영이 재기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적어도 다음 참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2028년까지는 이러한 정치 지형이 계속될 전망이다. 

 

 

예상 밖의 압승과 ‘인물 중심 선거’의 전개

 

 이러한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이 모자라서 획득한 14석을 다른 정당에 배분해야 했다. 이를 생각하면 다카이치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초반에는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의 결합이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그 경우 야권의 승리가 예상되어 정권교체 시나리오도 나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자민당 과반 가능 전망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중간 반환점을 넘어서면서 자민당 압승 시나리오가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가 그대로 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그대로 되었다.

 

 이번 선거는 정책 평가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핵심 질문은 “어떤 정책이 좋은가”가 아니라 “누가 일본을 이끌 것인가”였다. ‘다카이치냐, 다른 인물이냐’의 선택 구도 에서 유권자들은 다카이치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자민당의 압승은 단기간에 형성된 인물 중심의 이미지 정치가 소선거구제 구조 속에서 의석으로 증폭된 결과였다.

 

 다카이치 인기의 배경에는 ‘서사 정치’가 있다. 그는 일본 정치의 전형적인 세습・엘리트 코스와 거리가 먼 인물이다. 맞벌이 서민 부부의 딸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유리지붕을 뚫고 ‘자력으로 총리 자리에 올라온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주로 여성과 젊은이들이 환호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비주류 위치에서 출발해 당내 권력 구도를 뒤집고 자민당 총재가 되어, 연정 파트너 이탈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감정적 대응 대신 정치적 관리로 돌파했다는 일련의 과정은 ‘역경을 이겨낸 리더’라는 상징을 만들었다.

 

 이 개인 서사는 일본 사회가 느끼는 집단적 불안과 겹쳐졌다. 중국과의 긴장, 미국에 대한 불신, 경기 침체에 대한 체감, 고물가로 인한 생활비 상승 등 복합 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돌파할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중의원 해산, 총선 실시라는 도박에 가까운 강수가 오히려 결단력의 증거로 읽히면서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이 선거의 의미는 인물 선호를 넘어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일본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다카이치 총리가 내건 ‘적극 재정’과 ‘헌법 개정’을 지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역할 변화: ‘평화국가’에서 ‘전략국가’로

 

 이번 선거를 계기로 확인된 중요한 변화는 일본의 국가 정체성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은 ‘평화국가’라는 자기 인식 위에서 헌법의 제약으로 인한 비대칭 미·일동맹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수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전략국가’ 정체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대만 유사 발언 이후 중·일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패권에 맞서는 선택을 했다는 데서 확인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군사력 증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안보·외교를 통합해 국가 전략을 설계하고, 국제질서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하는 국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전후 평화국가로서 일본이 안주했던 자유주의 및 다자주의 국제질서가 붕괴하여 각자도생의 다극 질서로 이행하는 데 맞춰, 일본은 새로운 국가 만들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1차로는 시진핑 효과이며, 2차로는 트럼프 효과라고도 할 수 있다.

 

 당연히 헌법 개정 논의는 다시 전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참의원에서 개헌 세력이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곧바로 강행되기보다는 장기 관리형 의제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헌법 개정은 국민투표라는 관문, 사회적 합의의 문제, 국제적 시선 등을 감안할 때 중의원 의석 우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개헌론은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상징적 도구로 계속 제기하면서도, 실제 추진은 단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안보 정책은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이미 채택된 안보 3문서 체제를 토대로 방위력 증강은 제도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에 더해 올해 안으로 새로운 안보 3문서를 채택하겠다는 의지는 바로 실행에 옮겨질 것이다. 방위비 GDP 2% 수준은 ‘목표’가 아니라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고, 적기지 공격능력 논의 역시 현실적 군사 옵션으로 다뤄지고 있다. 오키나와 주변 섬들에 대한 자위대 부대 배치도 완성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은 다카이치 내각 하에서 ‘전쟁 억지 능력을 갖추고, 이를 행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실질적 안보국가로의 이행을 완료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군사 문제를 넘어 경제정책과 결합하여, 경제 안보의 의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적극 재정과 안보국가의 결합

 

 다카이치 체제의 경제정책은 적극 재정과 감세, 산업 지원을 결합하는 방향이다. 이는 경기 둔화, 소비 위축, 고령화 부담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여기에 방위비 확대가 결합하면서 일본은 ‘재정확장형 안보국가’라는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데 재정문제가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이 확대되면, 금융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엔화 가치, 일본 국채 금리, 글로벌 자본 흐름은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일본의 재정 확대 방향은 단순한 국내 경제정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금융 환경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한편, 압도적인 지지는 다카이치 총리에게 덫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자민당의 압승은, 자민당이 포괄정당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한편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강경보수로 이끌고 가려는 우익 세력이 존재하는 가운데, 비례명부에서 하위에 머물렀던 반 다카이치 세력이 살아 돌아옴으로써 이들에게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다. 재정, 안보 정책에 더해 의원 정수 조정 등 구체적인 정책에 들어가면 다카이치 1강 체제에 불만인 사람들이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 

 

 미·일관계에서는 압승이 오히려 부담이 된다. 강한 국내 기반을 가진 일본에 대해 미국은 더 많은 역할과 비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3월로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은 방위비 분담, 경제안보 협력, 공급망 재편, 대중 전략 조율 등에서 실질적 요구가 제시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다카이치 내각은 압도적 지지를 배경으로 미국의 압력에 맞서려 하겠지만, 중·일 갈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미·일동맹을 관리해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의 자율성 확대’와 ‘미·일동맹 속에서의 책임 확대’라는, 상반되는 방향에서 오는 상충하는 요구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중·일관계는 긴장된 관리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표현된 압도적 지지는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한 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강한 지도자는 일정한 조정의 여지를 갖는다. 중국의 압력에 맞서 대응하기에는 일본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공개 장면에서의 강경한 태도와 비공개로 시도되는 중·일관계 관리 정책이 병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중국 역시 대일관계를 무한정 악화시키는 것은 부담이기 때문에, 긴장과 관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장기 국면이 예상된다.

 

 한·일관계도 양가적이다. ‘평화국가’에서 일탈하여 ‘전쟁가능국가’를 표방하는 일본에 대해 경계하고 견제하는 상징 정치가 강화되면서도 미·중 패권경쟁 사이에서 동병상련의 일본과 협력하는 실용 외교가 분리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이념적 수사와 정책 실행 사이의 간극을 현명하게 메우며 대일 외교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경주와 나라에서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개인적 신뢰 관계 구축에 성공한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의 정체성 변화가 곧바로 한·일관계 악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국이 이 변화 속에서 정책 운용의 제약과 조정 공간을 읽어낼 수 있느냐다. 북·일관계 역시 변수다. 강경 이미지의 지도자가 제한적 접촉에 나설 경우 그것은 ‘양보’가 아니라 ‘결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납치 일본인 가족들은 다카이치에게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언제나 ‘가장 빠른 세컨드 무버(Fastest Second Mover)’로 행동해 왔다. 교착 국면 속에서 오히려 변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강해진 일본, 더 무거워진 전략적 부담

 

 이번 선거의 결과는 정책 평가가 주요인이라기보다 장기 보수화 흐름 위에 이미지 정치가 얹혀짐으로써 일어난 일종의 사건이다. 다카이치 1강 체제는 강력하지만 재정, 외교, 당내 통합이라는 제약 속에서 겨우 유지될 수 있다. 일본은 더 강해졌지만 동시에 더 많은 전략적 부담을 안고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일본의 변화를 단선적 우경화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제약과 틈을 읽어내는 전략적 시각이다. 일본 정치가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진 지금, 우리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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