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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68호

중·일 갈등의 파고를 넘어 국익을 지향할 때

조회
184
등록일
2025-12-07

중·일 갈등의 파고를 넘어 국익을 지향할 때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을 우발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중·일 갈등은 일시적 차원이 아닌 글로벌 차원의 안보 위기 고조와 우경화 경향의 한 단면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언제든 중·일 갈등의 칼날이 우리에게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 파장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11월 7일 중의원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는 대만이 공격받는 상황일 때 일본이 자위권 차원에서 무력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에 대해 이같이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은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최근 일본의 보수 우경화를 이끌었으며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롤 모델에 해당하는 아베 전 총리도 이 같은 입장을 명확히 한 바 없다.

 

1971년 유엔 가입과 동시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확보한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중국이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하나의 중국 원칙’은 역대 중국 정부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이 같은 중국의 입장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발언 이후 중국의 반발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의 일본 총리를 향한 소위 ‘참수’ 발언이라는 극단적 행보에 이어 중국은 일본에 대한 자국민 유학과 여행 자제령, 일본 수산물 수입 제한, 중국 내 일본 문화 예술 공연의 중단 등 대일 제재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중국 공연 중 무대에서 강제로 퇴장당한 일본 여가수의 모습은 전례에 없던 일이다. 또한 중국은 보하이만 등에서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11월 초 취역한 중국 평갑판 항공모함 푸젠함에서는 첫 실사격 훈련이 이루어졌다. 

 

일본 역시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파장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11월 26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은 대만에 대한 모든 권리와 권한을 포기했으며, 현재 대만의 법적 지위 등을 인정하거나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지만,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과정에 중국은 배제되었으며, 중국 입장에서 대만의 법적 지위 문제는 이미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정리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11월 22~23일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과 요나구니섬을 시찰하고 미사일 배치 등 방위 계획을 언급했다. 이시가키섬은 대만과 230km 거리로 현재 자위대의 지대공과 지대함 미사일이 배치된 일본 최서단 지역이다. 요나구니섬은 대만과 110km 거리라는 점에서 고이즈미 방위상의 방위 계획은 일본 자위대 미사일의 전진 배치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일본 군국주의가 되살아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국가 영토 주권을 수호할 결심과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계산된 셈법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을 우발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대면에서, 중·일 간 갈등의 상징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위)를 비롯해 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까지 거론했다. 모두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문제로 역대 일본 총리들이 공개적 언급을 삼가던 주제들이었다. 경주 중·일 정상회담은 첫 상견례 자리이며 당장 중·일 간 뜨거운 현안이 대두된 것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의례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미 경주에서부터 다카이치 총리의 대중 강경 행보는 예고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다카이치 총리의 행보가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0월 말 일본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에어쇼에 참가하는 한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오키나와현 나하 기지에 기착해 급유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다. 일본 정부의 거부 이유는 블랙이글스 소속 공군기가 지난 10월 말 독도 상공에서 태극 문양 비행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이었다. 블랙이글스의 일본 기착 중간 급유는 사전 양해된 사안으로 알려졌으며, 두바이 에어쇼가 임박한 상황에서 대체 급유지를 찾지 못한 한국 공군은 참가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국의 역린에 해당하며, 이를 빌미로 한 급유 거부는 자위대의 단독 결정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다카이치 총리의 직접적인 의사표시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시기의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한·미·일은 군사협력의 접촉면을 넓혀 왔으며, 이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이어지는 흐름을 보였다. 이재명 정부는 사상 최초로 미국 방문 전에 일본을 들러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실용주의 기조를 견지했다. 일본의 급유 거부는 이 같은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이며, 우리 당국도 일본에서 열린 행사에 군악대 참가 취소 및 한·미·일 해상 수색훈련 조정 등으로 대응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최근 행보는 일회성이 아닌 계산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극우 성향으로 평가받는 다카이치 총리의 강경 행보 이면에는 일본 국내 정치의 보수 우경화라는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재팬 퍼스트’와 ‘일본인답게’를 표방하는 극우 성향 참정당의 돌풍은 일본의 보수 우경화를 상징하는 사례다. 출범 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다카이치 내각은 중·일 갈등이 심화된 11월 말 닛케이 여론조사에서 75%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으며, 자민당도 5% 상승한 41%를 기록해 동반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야당 중에서는 참정당이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중·일 갈등을 초래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에 대해서 55%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철회할 명확한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때

 

다카이치 총리는 12월 3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입장이 1972년 중·일 공동성명 내용 그대로인지 묻는 질문에 “정부의 기본 입장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 그대로이고 이 입장에 일절 변경은 없다”고 답했다. 1972년 중·일 수교 당시 조인된 이 공동성명은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으며, “중국은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강조한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 정부는 “이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부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입장을 완화한 것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와 내각의 행보가 지금과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으로 이어진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G2에서 G5로 하락한 일본의 국제적 위상, 급속한 고령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등은 일본의 보수 우경화와 최근 참정당 돌풍 및 다카이치 총리의 대외 강경 행보의 구조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아베 총리시기부터 집단적 자위권, 존립 위기 사태,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 등 우회 통로를 확보해 전수방위 원칙의 족쇄를 벗어던졌다. 다카이치 내각은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아 핵추진 잠수함 도입 검토를 공식화했으며, 살상무기 수출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12월 2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여당은 방위력 강화 찬성 여론을 명분으로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을 철폐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일본은 2023년 특허료를 지불한 방위 장비의 경우 라이선스 보유국에 부품만 수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바꿔 완성품도 수출할 수 있게 했다. 이를 근거로 최근 일본은 미국에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을 수출했다. 최근 일본의 방위산업 관련 기업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경제 성장률 저하와 내부 정치적 문제에 더해 홍콩 화재 사건의 여파까지 시진핑 정권 역시 대외정책에서 물러설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만이라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일본이 건드렸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일본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의 협상을 시도할 개연성은 희박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2일 ‘대만 보장 이행법’에 서명했다. 초당파적 지지를 얻어 미국 상하 양원을 통과한 이 법에 따르면, 미국이 대만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부과해 온 제한에 대한 재검토가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대만 고위층의 미국 방문을 포함한 양측의 공식 교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대만은 이 법의 도입을 크게 환영한 반면 중국은 즉각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 수장은 모스크바에서 전략안보협의를 개최하고 일본을 향해 “침략역사 부정 시도를 저지할 것”이며, “일본 군국주의 부활 음모를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계기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연대를 강화한 가운데 일본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이 높은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한 모습을 과시한 셈이다. 중·일 갈등의 전선이 동북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일 갈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은 독도 문제 등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일본은 블랙이글스 급유 거부 사태의 확산을 방지하며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사드 한반도 배치를 이유로 우리에게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해온 바 있으며, 일본은 문재인 정부 시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할 당시 남·북·미 관계 개선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은 이미 뉴노멀이며,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과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단기간에 종식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중·일 갈등은 일시적 차원이 아닌 글로벌 차원의 안보 위기 고조와 우경화 경향의 한 단면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언제든 중·일 갈등의 칼날이 우리에게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미동맹이라는 현실에서 한·중·일 관계의 실용적 관리는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이 헤어질 결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을 설득하고 비핵화로 견인하기 위해서는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중·일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편들기가 아닌 대한민국 국익 중심의 전략적 명확성을 기반으로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한반도 평화의 기회로 바꾸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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