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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5호

'제2의 7․7선언'이 필요한 때다

조회
4
등록일
2010-07-12

'제2의 7․7선언'이 필요한 때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은 남북관계를 화해로 전환하고 남북 기본 합의서, UN 동시 가입 등을 이끌었다. 그러나 현재 남북관계 경색과 미중 갈등 심화로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G-20 의장국인 한국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제2의 7.7선언'과 같은 큰 그림과 전략이 절실하다.

1988년 7월 7일 노태우대통령은‘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하여 남북관계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내외정세의 변화에 부응하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고립시키기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성원으로 끌어들이고, 남북관계도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새로운 전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탈냉전의 기류가 형성되면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내부변화에 진통을 겪을 때였고, 마침 임박한 서울 올림픽은 모스크바와 LA올림픽이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진 이래 12년 만에 양 진영이 모두 참여하여 동서화해의 전기가 되는 축제로 치러질 예정이었다.

 

국내적으로는 1987년의 민주항쟁의 결과 첫 직선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적 정통성이 회복되고 사회 각계에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갇혀 있던 통일논의가 활성화되고 통일문제가 정치와 사회의 중요 이슈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것이 통일문제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이라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남북 간의 체제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인하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7.7선언’은 이러한 상황적 배경 하에 남북 각계각층 인사의 상호 교류를 추진하고, 대북교역문호를 일방적으로 개방하며, 북한의 우리 우방과의 교역과 관계개선에 협조할 용의를 밝혔다. 

 

 이로써 우리의 북방정책이 탄력을 받아 한소, 한중수교 등 공산권과의 관계개선이 실현되었으며 이제는 우리의 최대 교역대상이 된 중국이라는 거대한 수출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남북관계 측면에서도 국제적 탈냉전시대의 대북정책 비전과 방향이 제시됨으로써, 이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인프라를 선도적으로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우리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방안이 마련되었으며,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뒷받침하는 법제도가 잇달아 정비되었다. 특히 북한을 민족 전체의 발전을 위한 동반자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탄생과 남북한 UN 동시 가입을 가능케 하였다. 이후 네 번의 정부교체가 있었지만 남북관계의 큰 흐름이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7.7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라는 기둥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국제적 탈냉전의 흐름을 잘 읽고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국익을 신장시키고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기본 틀을 만든 현명한 정책결단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7.7선언’ 당시 우리 정부의 정세판단과 이에 대한 대응은 지금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는 미중간의 관계정립을 둘러싸고 국제질서가 의미심장한 전환기를 겪고 있고, 남북관계가 천안함 사건 이후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유동적이며, 내부적으로도 6,2 지방자치체 선거 이후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여건은 어떤 면에서 ‘7.7선언’ 당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 해체의 대전환기에서 수동적 위치에 머물지 않고 화해와 개방의 흐름을 민족사에 접목시키려는 진취적인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통일논의를 둘러싼 남남갈등이 점증하고 여소야대라는 정치역학의 구도 속에 강력한 통합력을 발휘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를 편가르지 않으면서 낮은 자세로 소통의 정치를 실천하고 국민여론을 수렴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이 남남갈등의 폭을 좁히고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한 여야 만장일치의 지지를 끌어 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해 압박과 강경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오히려 대북 심리전방송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우방과의 관계개선을 돕고자 했다. 사실 ‘7.7선언’ 당시에도 남북관계는 긴장 상태에 있었다. 반년 전에 발생한 KAL 858기 사건에 대한 처리가 미진한 상황이었으며, 북한은 ‘7.7선언’을 분단고착화 선언이라며 즉각 거부했다. 

 

  KAL 858기 사건은 북한공작원에 의한 폭탄테러로 외국인 2명 등 민간인 115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북한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여 대회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국제협조로 범인이 체포되어 전모가 밝혀졌고, 북한은 국내외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상응한 보복을 경고하고, 안보리의 긴급소집도 요청하였다. 대북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했지만 미국무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테러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은 당연한 조치였고 북한이 이를 거부한다면 상응한 보복도 정당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증적(對症的) 조치와는 별도로 ‘7.7선언’ 같은 근본적 처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정부가 내외정세 변화를 활용할 기회를 미뤄두고 대북 응징만 집요하게 추구했다면 성과도 불확실했겠지만, 남북관계의 전기 마련은 고사하고 북방진출이나 신규시장 선점의 기회도 놓쳤을 것이다. 

 

 물론 그 때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겠지만, 아무리 완벽해도 대증적 조치만으로는 유사 사건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다. 오히려 유사 사건의 재발은 근본적 처방이 꾸준하고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데 기인할 수 있다.

 

 당면한 한국의 외교, 안보, 남북관계를 말할 때 우리는 여전히 천안함 사건부터 출발하게 된다. 천안함 사건을 없었던 것처럼 괄호 안에 묶어두고 외교, 안보, 통일정책을 언급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데 이사건의 대응조치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우리가 원하는 해답이 나오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대응조치는 국제사회의 원군을 필요로 하고 남북관계의 국제적 성격을 강화시켜 결국 우리의 주도력을 잃어버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논란과 고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에서 찾아야 할 교훈과 과제로 최소한 두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첫째,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상존한다는 진부한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 정부와 군은 언제나 신뢰할 만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렇게 불안정한 휴전상태를 이제는 종식시킬 때가 되었다는 각성이다. 지난 시기 남북관계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휴전상태라는 불안정한 평화에 의지한 것이었으며,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정한 가짜 평화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국가 위기관리의 문제이며 한반도 미래전략의 문제이다.

 

 최근 남북관계 경색과 천안함 사건 여파로 우리와 중국 등 북방국가 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우리로부터의 경제지원이 중단된 북한은 활로를 찾아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간의 새로운 결집 움직임과 북한의 불안정성의 증대도 신경이 쓰인다. 서해 해상훈련을 둘러싸고 미중 간에 알력현상도 노정되고 있다. 중국은 대만과 경제통합을 추진하면서 양안(兩岸) 간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가져가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잃었고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을 놓고 벌이는 대만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민족의 미래에 대해 가졌던 ‘7.7선언’ 당시의 자신감을 다시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노태우 정부가 당시 KAL 858기 사건에도 불구하고 내외정세 변화를 활용하여 “과거의 적들”을 “친구”로 돌려세운 것처럼, 현 정부도 국가발전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을 놓치지 말고 ‘기다림’의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 자신감과 주도력을 국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7.7선언’ 당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금년 11월 매우 비중 있고 중대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있다. 당시 서울 올림픽이 탈냉전 시대의 서막을 축하하는 세계적 축제가 되었듯이, 금년 G-20 행사는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축제로 만들 수 없을까?

 

‘제2의 7.7선언’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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