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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18호

‘통미봉남’을 두려워 말자

조회
2
등록일
2011-02-15

‘통미봉남’을 두려워 말자

군사실무회담 결렬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식량지원을 검토 중이다. 한국 정부는 '통미봉남' 우려를 버리고, 대북 식량지원을 북한 태도 변화를 유도할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식량지원을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핵 문제 등 다른 현안과 연계를 고집하기 보다 6자회담 등 우회로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목표를 달성하고, 인도적 지원으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며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강화할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입장 차이만 확인한 남북 군사실무회담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던 판문점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번 판문점 군사실무회담은 1·19 미‧중 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의 대화 분위기에 편승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선논의 입장을 고수했고 북한이 이를 끝내 거부하면서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2월 8일에 열린 첫날 회담에서는 고위급군사회담 의제와 수석대표의 급을 놓고 남북 간에 이견을 드러냈지만 양측 모두 대화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회담 이틀째인 2월 9일 오전, 통일부는 북측이 1월 10일과 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제안했던 남북적십자회담 재개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전문을 북측에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적십자회담을 일부 수용함으로써 군사실무회담에서 북측의 양보를 얻어내려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월 9일 오후에 속개된 군사실무회담에서 북측은 “천안함 사건은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차기 회담일정도 정하지 않은 채 퇴장해버렸다. 이튿날 북측은 관영매체를 통해 “역적패당과는 더 이상 상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회담의 결렬 때문에 우리 측이 고위급군사회담 이후에 일정 등을 조율하자고 제안했던 적십자회담의 성사도 불투명해졌다. 남북적십자회담은 당초 작년 11월 25일에 개최 예정이었다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무기한 연기됐던 것이다. 지난 2월 5일 북한 적십자사가 우리 측에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월선한 북측 선박과 선원 31명을 조속히 소환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에 남북 당국자 간 접촉은 있겠지만, 이 정도로는 남북대화의 실마리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 고위급군사회담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오는 2월 말부터 3월 초순까지 실시될 예정인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훈련으로 인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될 위험성마저 있다. 이 때문에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미 하원에서 “김정일이 김정은 후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연평 포격과 같은 추가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훈련의 경우 2009년 훈련 때부터 북한의 WMD 신속대응과 탐지, 제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부대가 참가하는 등 북한 급변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어 북한이 강하게 반발해왔다.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끝난 뒤 얼마 안 있어 천안함 사태 1주년이 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남북대화의 재개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 식량지원은 대화의 소중한 불씨

 

  이처럼 남북대화가 중단되면서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북한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북 식량지원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2월 10일부터 북한 주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조사에 착수했고, 20일에 합류할 국제요원들이 지금까지 WFP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던 지역에서 3월 12일까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그동안 북한당국은 203개 군 가운데 주로 군수공장이 많은 자강도와 군부대가 자리 잡은 강원도 등 30여 곳에 대해 WFP의 접근을 제한해왔었다.

 

  미국은 2007년부터 대북 식량지원 방침을 세웠지만, 지원된 식량이 군대 등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북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식량지원 협상이 난항을 겪어왔다. 미국과 북한은 식량분배 감시활동을 크게 개선한다는 내용의 식량지원 재개 프로그램 기준에 합의함으로써 2008년 5월 17일 미 국제개발처(USAID)가 WFP를 통해 40만 톤, 미국 비정부단체들을 통해 10만 톤 등 총 50만 톤을 마련해 지원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리하여 2008년 6월부터 2009년 3월 초까지 16만 9000톤의 식량이 북한에 제공되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요원의 추가배치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자 북측이 식량지원을 거부하였고, 마침내 미국의 대북식량 지원은 중단되고 9월에는 미국 측 지원요원들이 철수하고 말았다. 

 

  이번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검토는 연초에 북한당국이 분배 투명성을 약속하며 미국 측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북측이 약속대로 자강도·강원도 등 군사민감지역에 대한 WFP의 접근을 허용한다면, 미국으로부터 지난번 중단됐던 33만 톤의 식량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추가 식량이 빠르면 4~5월 무렵부터 북한에 지원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1월 26일 방한한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대북 식량지원 재개 문제를 우리 정부와 협의하였으며, 당시 우리 정부는 대규모 식량지원을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핵 문제 등 다른 현안과 연계시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군사회담의 성과를 위해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뒤로 미루도록 한 점은 나름대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남북 군사실무회담마저 결렬되면서 남북대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 만큼 이제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를 활용해 남북대화의 여건을 만드는 역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 남북군사회담이 결렬된 조건에서 오히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활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을 잘 활용한다면 남북대화의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넘어간 대화의 주도권

 

  2008년 5월 17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발표는 형식적으로는 인도적 지원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싱가포르 합의에 따른 경제적 보상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4월 8일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싱가포르에서 회동하여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의 정치적 보상(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교역법 적용 제외)을 교환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 뒤 북한은 6월 26일 핵 신고서를 제출했고 다음날 영변원자로 냉각탑을 폭파시켰다. 

 

  이처럼 대북 식량지원은 완고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정부 간 대화가 단절됐을 때 대북 식량지원을 매개로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작년 7월께 천안함 사태가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북‧미 간 비공식 접촉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전제로 한 대북 식량지원설이 나돈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에 보조를 맞춰 남북대화 복원에 나선 적이 있다. 2008년 5월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발표에 맞춰 우리 정부는 옥수수 5만 톤 지원을 제안했으나 북한이 거부했다. 2009년에는 옥수수 1만 톤의 지원을 제안해 북한도 수용했으나 옥수수를 구하기 어려워 지체하다가 이듬해 발생한 천안함 사태로 흐지부지 됐다. 

 

  2010년 9월 13일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제공되었다. 북한의 수해지원 요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에 쌀 5000톤과 40㎏ 시멘트 25만 포, 컵라면 300만 개 등 구호물자를 전달한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북한적십자사 제의로 10월 30일과 11월 3일 두 차례로 나눠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우리 정부가 여전히 5·24조치를 견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관계의 전기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타진되던 남북관계 개선 노력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때문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남북 군사실무회담의 결렬로 향후 남북관계가 어두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우리 정부는 이러한 사례를 참조하여 지속적인 한반도 긴장완화와 비핵화 노력을 통해 고질적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주도한다는 전략적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군사적 전용을 불허하는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과감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의 제공을 북측에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감한 조치가 어렵다면 곧바로 6자회담으로 넘어가 그 틀 속에서 남북대화의 기회를 모색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통미봉남’은 기우에 불과

 

  우리 정부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작은 원칙만 고집하다가 자칫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우리가 가진다’는 큰 원칙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라는 원칙을 주장하는 이유는 1990년대 초 1차 북핵위기 때 있었던 ‘통미봉남’ 상황이 재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려는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 당시에 한국이 북‧미 간의 회담에 참석조차 못한 채 회담 결과에 따라 대북 경수로 비용 46억 달러 가운데 30억 달러를 부담하게 된 데 기인한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통미봉남’의 상황을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앞서 한미 동맹관계를 우선한다는 입장을 줄곧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통미봉남’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현재 한미 간에는 국제무대에서의 글로벌 파트너십이 굳건하고 한미 FTA를 비롯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 간에 직접대화를 한다고 해서 한국이 여기에 끌려가는 구조는 이미 아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8일 미 의회에서의 신년 국정연설(SOTU)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의 경우 미국은 동맹인 한국과 행동을 함께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포기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며 사실상 ‘통미봉남’의 가능성을 일축하였다. 

 

  그런데도 만약 한국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남북대화 재개를 우선으로 내세우며 대북 식량지원이나 6자회담 재개를 반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한미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연임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문제가 점차 악화되어 미국 대외정책의 발목이 잡히면 머지않아 한미관계의 실질적 내용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인 서울로 갈 수만 있다면, 경유지는 좀 우회할 수도 있다는 탄력성이다. 우리 정부가 한미공조를 굳건히 하고 있다면, 경유지에서 북‧미가 먼저 만나든 6자회담이 먼저 재개되든 이것이 최종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적 목표만 뚜렷하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안 풀리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의 문을 닫기보다 오히려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해 남북대화의 끈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당장 그럴 수 없다면 남북대화와 별도의 트랙으로 6자회담 재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 한반도문제의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폭넓고 멀리 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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