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과 핵 참사, 누구를 향한 경고인가?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는 국제적 협력을 이끌었고, 북한은 이를 계기로 무조건 6자회담 및 우라늄 농축 논의 등 교착 상황을 풀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노후한 북한 핵시설의 안전 문제로 인한 핵재앙 가능성이 더 큰 우려이다. 따라서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비핵화 진전과 함께 핵안전성 확보 조치가 시급하며,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 등 대규모 재해 공동대응 문제는 남북 갈등 사안과 분리하여 접근해야 한다.
일본의 핵사고와 인류공동체의 재인식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인명 손실과 물적 피해는 아직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번 지진은 내진설계나 방재훈련 등 세계에서 가장 지진에 잘 대비하고 있던 일본조차 거의 손을 쓰지 못할 정도의 재앙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설상가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파손으로 인한 방사능 피해가 추가되면 우리 세대에 발생한 사상 최악의 지진피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현대가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라 할지라도 또한 아무리 부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인간의 성취가 보잘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공동체가 처한 상황은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기보다 서로 협력해서 대처해야 할 과제가 더 많이 있다는 점도 깨우쳐준다. 일본의 재난에 전세계가 눈을 떼지 못하고 거의 100개에 이르는 나라들이 구호와 지원에 나서고 있는 사실에서 국경을 초월한 인류공동체의 유대감과 희망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서로 갈등관계에 있거나 구원(舊怨)이 있던 이웃 나라들도 일본에 대한 위로와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데 동참하고 있다. 작년 봄이래 중국과 일본 간에는 센카쿠(尖閣) 열도 또는 다오위다오(釣魚島) 불리는 도서영유를 둘러싸고 상호 국민감정을 자극하면서 갈등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아왔었다. 지진발생 1주일 전에는 서로 전투기까지 발진시키고 총구를 겨누는 무력출동의 위기까지 있었지만, 최근에는 중국이 일본에 구조대를 파견하고 유류 2만톤을 포함한 대규모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조대를 파견한 것을 비롯하여 구호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한다. 특히 민간차원에서 종군위안부에 동원되었던 피해 할머니들과‘독도지킴이 반크(VANK)’등 반일단체가 일본에 대한 구호지원 여론을 선도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북한도 조선적십자사회 위원장 명의의 위로전문을 보냈으며,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외교적으로 보면 조일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달아왔지만 평양시민들은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에게 동정을 보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인류공동체를 위협하는 대재앙 앞에서 이웃간의 원한이나 다투는 모습들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세계인 모두가 국경을 초월한 인류공동체의 일원임을 재발견하게 된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유명해진 존 던(John Donne)의 시(詩)“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는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를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당신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북한의 미묘한 이니셔티브
일본의 대재앙을 계기로 형성된 국제적 연대감과 협력분위기를 틈타 북한은 핵실험과 서해도발 사태이후 교착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을 기민하게 취하고 있다.
우선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5일‘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이라는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차관의 평양방문 결과를 설명하면서“조선은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나갈 수 있고, 6자회담에서 우라늄 농축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회담이 재개되면 러시아 측이 제기한 기타 문제들도 논의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러시아측이 제기한 문제라는 것은“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의 임시중지(Moratorium)와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의 방문 허용”을 의미한다.
그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미가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비핵화에의“구체적 조치”와 관련하여 비록 “구체적 행동”은 아닐지라도“구체적 언급”을 한 셈이다. 러시아는 이를 북한의 태도 변화로 간주하려는 듯이, 즉각 북-러 경제협력위원회 회의를 금년 여름 재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북-러 경제협력위원회는 2009년 5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동안 무기 연기되던 중이었다.
두 번째 북한의 미묘한 움직임은 서해표류 어민들의 귀환문제에 대한 입장에 변화를 보이는 한편 백두산 화산활동 공동연구를 위한 남북대화를 제의한 점이다.
북한은 지난달 서해에서 구조된 북한 주민 중 일부가 남한에 귀순한 사실을 두고 남측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강력 비난하면서, “억류된 주민의 전원송환 문제는 인권과 인도주의 문제인 동시에 북남관계의 중요한 문제로, 이번 사태를 놓고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다시 한 번 가늠할 것이다”라고 각을 세운 바 있다, 또한 전원송환을 주장하며 귀환하려는 자기 주민들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귀순자의 가족까지 동원한 대남심리전을 벌였다. 이렇게 됨으로써 북한으로서도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15일 갑자기 북한은 적십자를 통해 ‘기다리는 가족들의 심정’을 거론하면서 전원송환 요구를 접고 부분송환에 동의하였다. 북한이 이 문제를 완전히 접어버렸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17일의‘백두산 화산활동 공동연구’회담 제의를 앞두고 일본 대지진의 여파를 틈타 신속하게 입장을 바꾼 것이다. 남북회담의 걸림돌 하나를 스스로 치운 셈이다.
북한이‘백두산 화산활동 공동연구’를 위한 남북회담 제의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여파를 활용하여 다각적인 포석을 깔고 제기된 것이 분명하다. 사상 최대의 지진으로 한반도 주변의 지각과 판 그리고 마그마 등이 불안정해지고 활성화 된다면 후지산은 물론 백두산의 재분출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정치적 갈등이나 대립을 초월하여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진 시점을 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도 무력도발에 대한 사과를 선행시키는 소위‘북한의 진정성’을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계속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과 관련된 사과 문제를 우회해 남북대화가 개최된다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미가 유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인 ‘남북관계 개선’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대북지원 결정을 위한 환경도 개선되리라고 기대할 것이다.
백두산 화산활동 공동 대응문제는 이미 ‘10.4선언’ 이행을 위해 2007년 12월 개성에서 개최된 제1차 남북 보건의료협력 분과위 회의에서 합의한 사항이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진전이 없었던 만큼, 이 회담이 성사되면 북한으로서는 ‘10.4선언’의 이행 문제와도 연결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의 핵시설, 과연 안전한가?
그러나 북한이 일본대지진의 여파를 이용하여 어떤 이니셔티브를 무슨 의도에서 취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일은 북한의 핵재앙 가능성을 재인식한다면 사소한 문제이다.
원자력 안전기술과 관련하여 일본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진의 여파로 원자력발전소가 파손되고 그로 인한 핵재앙을 막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유럽의 선진국들도 이를 계기로 그동안 안전하다고 여기고 있던 자국 내 핵시설들의 안전성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가까운 중국도 추가적인 원전건설 승인을 보류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향후 건설되는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을 상향하기로 하는 한편, 기존의 원전 안전성도 다시 한 번 전면조사 하기로 하였다.
일본 사태를 계기로 전세계가 핵공포를 재삼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원전 이외에 에너지 문제를 당장 해결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안전성을 높이는 노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는 해당 국가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주변국 모두의 이해가 달려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의 핵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를 더욱 높이지 않을 수 없다. 불능화 조치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다시 재가동을 위한 복구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영변의 여러 가지 노후된 플루토늄 핵시설과 최근 공개된 우라늄 핵시설 등의 안전 문제가 새삼 걱정이 된다.
일본과 같은 핵안전 선진기술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모든 원전 상황을 공개하는 나라에서도 핵재앙을 사후에 방지한다는 것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데, 북한과 같은 환경에서는 핵안전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처하기 위해 사후에 아무리 신속하게 외부에서 지원을 하려 한다 해도 이미 수습 불능의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루속히 6자회담이 재개되고 비핵화를 위한 진전이 이루어짐과 함께 비핵화 과정에서 핵안전성을 확보하는 조치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대규모 자연재해 공동으로 대응해야
또한 6자회담과는 별개로 이번 일본의 사고를 계기로 형성되고 있는 자연재해와 핵사고에 대한 국제적 협력 분위기를 감안하여, 남북한 관계에서도 대규모 재해에 대한 공동대응 문제는 다른 남북 간의 갈등문제와 분리시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백두산 화산활동 공동연구를 위한 남북대화가 개최되고 이것이 새로운 남북관계 진전과 6자회담을 위한 건설적인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를 알아볼 필요도 없으며, 누가 종을 울리는가도 알아볼 필요가 없다.
남북 사이에는 서로 갈등하고 대립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로지 서로 협력하고 지원해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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