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를 위한 유엔의 역할을 기대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연임이 확실시 됐다. 유엔은 한국의 유일 합법정부 인정과 정전체제 유지의 근간이며, 1973년 6·23 선언과 1988년 7·7 선언을 거치며 남북대결의 장이 아닌 국제평화 외교 무대로 활용 전략을 수정했다.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미중의 중재 역할도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반 총장의 경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반기문 총장 연임의 의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연임이 확실시된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대만, 교황청을 제외하고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가입한 유엔은 인류공동체 그 자체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공동체를 대표하며, 50억 달러의 예산과 1만 명의 직원을 지휘감독하고 10만 명의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을 관장하는 사무국의 수장이다.
반기문 총장이 연임 출마선언을 하자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미국과 중국이 곧바로 지지를 선언했고 북한마저 지지의사를 전해왔다. 회원국 사이에서 기후변화와 중동 아프리카 사태에 대해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한 ‘반기문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2006년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등장으로 우리의 국가 브랜드에는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평화애호국의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또한 그간 한반도 분단으로 인해 동맹관계에 치중해온 우리 외교가 글로벌 차원에서 다자 간 분쟁관리에 관여하는 경험을 쌓아가며 국제사회 갈등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확보하는 좋은 기회도 얻었다.
그러나 한반도와 주변지역에서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북한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이고 있는 시점에 반기문 총장이 연임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이제 반기문 총장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이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한국과 유엔의 인연, 되돌아본 문제 논의의 역사
한국은 유엔이 탄생시키고 지켜준 나라이다.
우리는 유엔총회 결의로 설치된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 감시하에 총선을 통해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이 UNTCOK의 활동결과보고를 유엔총회가 승인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받았다.
6․25전쟁 당시 유엔안보리는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방어를 위해 유엔사령부를 구성하여 다국적군을 파병하는 결의를 하였고, 이것은 유엔 창설 이래 국제평화를 위한 첫 집단 군사행동의 사례가 되었다. 그때 창설된 유엔사령부는 현재도 한반도 정전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휴전협정에 따라 1954년에 열린 제네바회담이 결렬되자 한반도 문제는 다시 유엔에 넘겨져 유엔총회는 매년 한반도통일부흥위원단(UNCURK, UNTCOK의 후신)의 연차보고를 받아 한국만 초청한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를 토의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비동맹 친공산권 성향의 신생독립국들이 대거 유엔에 가입하면서 한반도 문제 토의에 ‘남북한 동시초청’ 또는 아예 ‘UNCURK 해체결의안’이 상정되기 시작하면서 유엔은 친남한 국가들과 친북한 국가들 간 표대결의 장으로 변모하였다.
급기야 1970년대 미․중 관계개선과 함께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자 유엔총회에 연차보고를 내던 UNCURK는 1973년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 통일’을 촉구하면서 해체하게 된다. 이것은 매년 되풀이되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진영 간의 표대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한반도 문제는 유엔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1980년대 랑군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이 나자 우리 우방들이 북한규탄을 내용으로 하는 안건상정을 시도하였으나 토의만 되고 소련과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하였다.
유엔과 인연이 다시 닿은 것은 1988년 ‘7․7선언’으로 우리가 북방외교를 강화하고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이후의 일이다. 특히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최고통수권자로서는 처음으로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것이 남북총리회담을 성사시킨 바탕이 되었으며, 남북총리회담의 진행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다. 올해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지 20주년이 된다.
이후 한국의 유엔 내 활동과 위상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유엔 가입 5년 만에 우리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했고, 안보리 진출 10년 만에 사무총장을 배출했다.
우리가 유엔을 남북대결의 장이 아니라 국제평화를 위한 외교역량을 함양하고 발휘하는 무대로 삼고자 한국외교의 일대 방향전환과 전략수정을 한 것은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이 시발점이다. 당시는 세계적인 데탕트 물결 속에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제1기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이 ‘6․23선언’으로 한국은 당시 남북대화의 경험과 국제정세의 흐름에 맞추어 통일과 평화정착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그동안 우리의 든든한 자산이었던 유엔 프리미엄을 과감히 던지고 북한과 관련하여 유지해온 ‘할슈타인 원칙’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한국외교의 일대 대전환을 이루었다.
‘6․23선언’은 15년 뒤에 ‘7․7선언’으로 이어졌고 지금 반기문 총장 시대를 예비한 토대가 되었다. 반기문 총장의 연임을 앞두고 ‘6․23선언’의 의의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할 때가 왔다
반기문 총장은 2006년 10월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을 통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실현과 세계안보와 지역안정에 대한 위협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유엔헌장과 회원국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어서 “유엔의 중재역할 강화와 총회권능의 확대, 사무국의 관료주의 혁파와 전문성 제고”를 구체적 목표로 내걸고 성공적으로 첫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반기문 총장은 자신이 연임되면 방북하여 한반도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에 끝없는 악재가 쌓여가고 남북당국 간의 감정 대립으로까지 치닫고 있어 중국도 미국도 남북관계의 중재자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는 마당에 유엔과 반기문 총장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반기문 총장은 유엔사무총장 취임 1주년인 2007년 10월 유엔총회에서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에 대한 지지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을 때,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고 남북한의 노력을 전 세계가 지지⋅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필요한 경우 필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도 있다.
이제 그 필요한 역할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이유야 어떻든 현재의 남북관계는 개선의 출로를 찾을 없을 정도로 꽉 막혀 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국들도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반도에 긴장이 극단으로 치닫고 동북아는 물론 세계평화 유지에도 중대한 위협요소로 자랄 수 있다. 유엔은 이러한 위협요인을 억지하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땅히 개입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유엔의 지원과 안전 보장으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해온 모델 국가이며, 지속적인 평화관리의 대상이 될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나라이다. 유엔은 명분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종결하고 하루속히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5년 동안 인류공동체의 대표로서 쌓은 경륜과 함께 남북관계 실무를 직접 다룬 지식과 경험도 있어 한반도 문제를 중재할 수 있는 적임자로 생각된다. 유엔의 이름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반기문 총장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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