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1호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청색 신호등 앞에서 망설이지 말라

조회
1
등록일
2011-08-12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청색 신호등 앞에서 망설이지 말라

발리 ARF 이후 남북·미북 회동으로 대화 국면 전환 조짐이 보인다. 미중 협력이 필요한 탈냉전 시대에 한반도 냉전 복귀는 시대 역행이다. 대북 강경책을 고수해 온 정부는 '원칙'과 '6자회담 흐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5.24 조치 전면 철회가 어렵다면 민간 대북 지원 및 교류를 허용해 대화 계기를 마련하고, '실용' 정신으로 유연성을 발휘하여 결단해야 한다..

발리에서 보여준 국면전환의 신호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직전에 남북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2시간 동안 회동하여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였다. 또 남북 외무장관이 비공식 접촉을 갖고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 노력을 하자는데 공감을 이루었다.

 

 이후 우리 외교통상부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것은 없었다”고 답했으나, 이 회동은 남북비핵화회담으로 명명되었으며 한반도 대결국면에 변화의 움직임을 가져오는 전주곡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남북대화에 원칙을 강조하고 있고 북한도 “인도네시아에서 실현된 외교당국자간 회동이 곧 남북관계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하지만 예전처럼 결의(決意)나 저의(底意)에 날이 선 느낌은 없다.

 

 작년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당시 신의주로 전달하기 위해 단동에 대기 중이던 지원물자를 도로 가져 왔던 정부가 최근 북한에당국에게 수해구호물품 지원을 제의하였다. 북한의 사과 등 진정성을 요구하며 다른 나라의 대북지원 움직임도 거북해 하던 기존 입장에 비추어 보면 다소 의외의 조치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슬며시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절교선언을 하고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면서 거친 욕설을 쏟아내던 북한이었다.

 

 남북의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가지고 국면이 바뀌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성급한 측면이 있다. 휴전선의 긴장은 여전하고 북방한계선 부근 해역에서는 최근에도 포성이 울려 작년 연평도의 악몽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가 통과의례적 남북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북한의 태도변화 없이는 돌파구가 열릴 것 같지 않던 답답한 상황이 발리회담을 계기로 분명 바뀌고 있다.

 

 발리회담 직후 뉴욕에서 미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은 2009년 말 보즈워스의 방북에 대해 그의 파트너인 김계관이 답방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보다 한 단계 격이 높은 만큼 비핵화 문제와 함께 양측의 주요 관심사들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공동보도문이 나오지 않았고 차기 일정에 대한 합의도 없었으나 ‘건설적이고 실무적’이었다고 평가된다.

 

 

국면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세계질서의 요구

 

 작금의 한반도 긴장과 대결국면은 천안함 사건이 증폭 역할을 했지만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 때부터 시작되었다. 정부는 “북한의 버릇을 고쳐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만들겠다”며 대북 강경정책을 전개하면서 전쟁불사의 안보강화를 주장하고과 북한붕괴에 대한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남북간 대결구도는 한미동맹 강화와 북중관계 유착으로 외연이 넓어지면서 동북아 냉전구조가 부활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항공모함을 동원한 동서해상의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미중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미중의 대립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금년 초 워싱턴 정상회담을 통해 봉합되었고 이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남북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합의되었다. 

 

  G-2로 불리는 미중의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 미소의 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 냉전구조에서는 세계가 서로 별개의 경제권으로 나뉘어 있었던 만큼, 진영간 국지적 대립이 오히려 진영내부의 결속과 질서유지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중관계는 세계시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더라도 국지적 대결이 미중간 대결구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본적으로 협력을 필요로 한다. 즉 과거 미소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불행이 자기의 행복이었지만, 지금의 미중관계는 그러한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할 수 없다. 

 

 탈냉전이 국제질서의 흐름으로 정착된 지금, 한반도에서의 국지적 냉전복귀 움직임은 시대정신에 대한 역류(逆流) 현상이다. 발리회담의 성사배경에는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를 미룰 경우 북미회담을 먼저 열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통보가 있었다. 

 

 미국은 북한문제에 있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적극 뒷받침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대결국면을 장기 방치하는 것은 북한 우라늄 농축문제의 해결이나 미중관계의 장래를 고려해 볼 때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그간 한국을 난처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이 식량조사단을 북한에 보내거나 북한 태권도 공연단을 초청하는 등 미북대화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을 해 온 것도 이에 연유한다. 

 

 

대북정책에서 포풀리즘을 제거하자

 

 발리회담으로 막상 국면전환의 청신호가 켜졌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전진할 수도 그대로 정지해 있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입장에 처한 것 같다.

 

 그동안 대북 강경정책을 전개하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원칙들을 남발한 탓이다. 정부가 밝힌 대북정책 원칙이라는 것이 사실상 '북한이 먼저 태도를 변화해야 한다'는 조건을 담고 있어서 북한이 명분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우리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경 보수층의 반발을 감내하고 기존의 대북원칙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적극적으로 미북대화나 6자회담의 흐름을 타고 갈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고수하는 대신 전환국면에 소외될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이러한 딜렘레마에 빠져 고민하는 처지가 된 것 자체가 안타깝기만 하다.

 

 답은 역사와의 대화에서 찾아야 한다. 통일 문제에 관한한 포퓰리즘이 통용되어서는 안 되며, 변화된 국제정세의 요구에 맞게 올바른 길로 들어서야 한다. 지도자는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라면 투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게 정도를 찾아내고 앞장서서 국민을 인도해 나갈 줄 알아야 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우리 정부는 남북 간의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평화통일을 달성한다는 것을 대북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성원해왔다. 남북 간에 불신과 대립을 키우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이와 배치된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황색 점멸등에 묶여 머뭇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청색 신호등으로 바뀌고 있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진행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 한다면 오히려 사고가 날 수 있다. 

 

 대북 강경정책으로 우리 안보 환경이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도가 한층 높아졌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남북경협이나 민간교류의 중단으로 생긴 빈 공간을 중국이나 제3국에 내주면서 우리 민간 사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현 정부는 '실용' 정신을 국정철학으로 내세웠다. 대북정책의 추진에서 이념적 차원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과 위주의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실용'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용' 정신은 상황이 변화할 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유연성을 설명하는데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설정한 '원칙' 때문에 5.24조치의 전면적 철회가 어렵다면 우선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과 교류협력을 허용하여 신뢰형성을 주도하고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 없이 어떻게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만들 수 있으며,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할 수 있는가? 정부가 진정한 실용정신으로 돌아가 결단을 내릴 때이다.

 

 이번 8.15 대통령 경축사를 기대해 본다.      

 

목록

평화재단 후원

소중한 후원 덕분에 평화재단이 존재합니다

후원하기

백서 발간

평화재단 20년 활동사

PDF 다운로드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