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관리? 샛길이 아닌 큰 길로 가라
• 대화와 군사적 긴장이 교차되는 한반도 정세 • 정부 대응, 북측에 대한 책임전가 수준 못 벗어나 • 잘못된 수순, 정부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격을 높이려면
대화와 군사적 긴장이 교차되는 한반도 정세
지난해 12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급서로 잠시 소강국면에 들어갔던 한반도 정세가 최근 들어 다시 어수선해지고 있다.
우선 대화움직임이 재개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오는 23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3차 고위급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미·북 고위급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만 없었다면 지난해 7월 뉴욕과 10월 스위스 제네바에 이어 12월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미·북회담 재개 국면에서 우리 정부도 연이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일 고구려 고분군 일대 소나무병충해 방제 지원을 위한 당국 간 실무접촉을 제의한 데 이어 14일에는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북한에 제의하였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남북 간 군사적 충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선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2월부터 4월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가 20일 K-9 자주포 등을 동원한 사격훈련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20~24일간 서해 군산 앞바다에서 한·미연합 대잠수함 훈련이 실시되고, 이달 27일부터 3월 9일까지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되며, 3월 1일부터 4월 말까지 한·미연합 야외전술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이 이어진다. 특히 독수리연습 기간 중에 한·미연합의 여단급 상륙훈련인 쌍룡훈련도 실시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쌍룡훈련은 지난해 한·미 간에 합의된 ‘격년제 여단급 연합상륙훈련 추진’에 따라 한미연합 상륙훈련과 미 해병대의 연습프로그램을 통합하여 실시하는 훈련으로서 한국 해병대와 오키나와 주둔 미 제3 해병기동군 소속 병력 등 1만여 명의 한미 해병대가 참가하는 대규모 상륙훈련이다. 해병대사령부에 따르면 쌍룡훈련은 1989년 실시된 팀스피리트 이후 23년 만에 최대 규모로 실시되는 한·미연합 상륙훈련이다.
줄지어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해상사격훈련을 비롯해 각종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자신들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연습이자 핵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대내외적으로 대결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에는 ‘조선인민군 전선서부지구사령부’ 명의로 ‘위임’에 따른 공개통고장을 발표하여 해병대의 해상사격훈련과 관련 ‘단 한 개의 수주(물기둥)가 감시되면 무자비한 대응타격이 개시될 것’이라며 해병대 사격훈련이 시작되면 서해 5도 거주 민간인들은 안전지대로 대피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실제 해병대의 포사격훈련은 별 충돌 없이 종료되었지만, 북한은 서해5도 주민들이 대피하게 만듦으로써 이들의 생활터전을 또 한 번 흔들고 정세불안정을 고조시켰다. 북한이 권력승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훨씬 더 자존을 강조하고 있는 데다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긴장 수요와 권력엘리트 내부의 충성경쟁까지 고려하면 향후 북한의 경고를 마냥 빈말로 치부할 수도 없다.
정부 대응, 북측에 대한 책임전가 수준 못 벗어나
정세가 어수선해지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기에 그 어느 때보다 주도면밀한 정세관리가 긴요해지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북측에 대한 책임전가용 대화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 급서 이후 북한은 일관되게 남측과의 당국 간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장례식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12월 30일 최고정책기구인 국방위원회 기관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여 이명박 정부와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그 입장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올해 남한에서의 4월11일 총선과 12월19일 대선을 염두에 두고 소위 ‘보수역적패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하는 가운데 지난 2일에는 국방위원회 정책국 명의로 9개 항에 걸친 대남 공개질문장을 발표하고 대화를 하려면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답변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9개 항의 공개질문에는 ①김정일 위원장 조문 문제에 대한 ‘사죄’, ②6·15와 10·4 선언 이행의지 천명, ③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대북비난 중단, ④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 ⑤대북 선제적 비핵화 요구 철회, ⑥대북심리전 중단, ⑦5·24 조처 철회 등 남북교류협력 재개, ⑧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호응, ⑨보안법 철폐 등의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남측과 당국 간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북측과의 대화를 재개하려면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과감한 결단이 이루어져야 하고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이 과연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인지 소위 ‘찔러보는 수준’에서 대북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북측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평가하면서 임기 말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에 기대를 접고 이제는 더 이상 남측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정부가 마땅한 대책이 없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매우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다. 솔직히 길이 없다기보다 결단이 없기에 진퇴양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상봉 제의만 해도 그렇다. 명분은 넘친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남북 간 군사적 현안이 해결되지 않았고 5·24 조치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북한과의 협력을 추진할 인도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산가족상봉 제의 자체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특히 고령인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들의 사망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산가족상봉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급하기도 하다. 1988년 이후 이산가족 신청자는 12만 8천여 명이지만 18차례의 대면상봉과 7차례의 화상상봉을 통해 상봉한 사람은 1만 4천여 명에 불과한 반면 사망한 사람이 약 5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수순, 정부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수순은 크게 잘못되었다. 첫째, 정부는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이 다소 유연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만 보더라도 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와 남북관계발전특위 소속 여야 의원 8명이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통일부는 이들의 건의에 호응하는 모양새로 개성공단설비 반출을 허용키로 하는 등 제한적이나마 개성공단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대북지원에서도 평양 이외 지역 주민들에 대한 지원만 제한적인 규모로 허용하던 데서 벗어나 지난 14일 평양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의료지원물자 반출도 승인하였다.
그러면서도 통일부는 6·15공동위원회 남북접촉은 불허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는 지난 정부 때만 해도 지금의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도 참가하여 초당적으로 치른 사례가 있다. 이렇게 보면 남북 당국 간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통일부의 6·15공동위원회 남북접촉 불허 이유는 매우 궁색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미연합훈련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남북 간 대화가 매우 어려워졌던 것이 지난 역사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1989년 이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 상륙훈련도 실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례적으로 실시되는 한미훈련 자체를 중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훈련의 수위나 내용은 신중하게 검토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정부의 이러한 노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이 정부의 대화제의에 호응해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북측은 정부의 대화 제의 전통문을 수령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실 북측은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제의하기 하루 전인 13일 노동신문의 논설을 통해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상봉 거론을 ‘모순되는 이산가족상봉 나발’이라며 비난했다. 북측의 거부가 불을 보듯 뻔한데, 정부가 대한적십자사총재를 앞세워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대화를 제의한 것은 그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둘째, 정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금강산관광지구의 이산가족 면회소 시설을 활용하여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여 이산가족상봉에 필요한 제반 시설부터 다시 점검, 가동해야 한다. 2008년 7월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2011년 8월 시설관리를 위해 금강산관광지구에 체류 중이던 현대아산 및 협력업체 직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시설들이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상봉 관련 시설의 재가동에 수개월이 소요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의 출발로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논외로 치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금강산관광 재개와 시설 점검 및 재가동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북측의 인도적 수요를 무시하면서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남북 간 인도적 사안에는 이산가족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남측이 요구한 것이 이산가족상봉이었다면 북측은 사실상 이와 연계해 식량지원을 요구해 왔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문제 앞에서 식량지원을 요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지사지해보면 식량문제는 북한이 안고 있는 최대의 인도적 문제이다. 식량부족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북한의 다수 주민 특히 취약계층에 속한 주민들에게 남측이 지원하는 식량은 매우 중요한 생명선일 수 있다. 미국도 24만 톤의 대북영양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분배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아직 대북식량지원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배투명성과 관련하여 우리의 대북지원 사실을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쉽고 빠르게 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북지원 결정 소식은 시장네트워크를 타고 삽시간에 북한 전역으로 전파되고, 그에 따라 시장에서의 곡물가격이 출렁거리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수입품의 남포항 입항 사실이 입소문을 통해 북한 전역으로 전파되는데 1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다. 북한 주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인도적 문제를 외면하면서 이산가족상봉만은 받으라고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상호주의 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격을 높이려면
3월 26일에서 27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2012핵안보정상회의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55명의 정상급 인사들이 한반도를 찾는 중요한 국제행사이다. 또한 이번 회의는 원자력 분야의 선도국인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평화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모토도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를 위해 글로벌 코리아가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격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평화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순히 당면한 핵테러 위협에 대한 대응방안만 논의하는 ‘실무적’ 회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과감한 결단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의 대북대화 재개 모색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정세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소지가 많은 가운데, 역설적으로 정부는 4월 11일 실시되는 19대 총선과 핵안보정상회의의 원만한 개최를 고려하여 대북제의를 남발하고 남북관계 자체를 정치화시킬 개연성도 매우 커지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사태악화를 막으려면 정부는 책임회피성 대화 제의라는 샛길에서 벗어나 북한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이끌어 가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큰 길로 나와야 한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이미 존재하는 해법을 정치적인 판단을 개입시켜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미래를 만들어 갈 결단을 해야 한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반통일세력으로 규정하고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고수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더 큰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태를 지속한다면 파탄된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정상화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향후 전개과정에서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 나가야 한다. 북한은 4차 당대표자회를 4월 중순에 개최할 예정이다. 김정은 부위원장이 총비서직 승계와 권력엘리트 정비에만 그치지 않고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내려오는 소위 조국통일 유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도 제대로 떼려면 대승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이 상태로 두고 어떻게 강성대국 진입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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