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위기를 풀자
● 개성공단 정상화 대화 제의로 대화는 시작이다 ●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모색과 기싸움 ● 한·미 공동 대화제의로 한반도 위기를 풀 새판을 짜자
개성공단 정상화 대화 제의로 대화는 시작이다
개성공단을 둘러싸고 남북 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사업장의 가동중단에 그치지 않고 공단 자체가 완전 폐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근 10년 동안 남북 공동번영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지금과 같은 심각한 상황이 조만간 타개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족의 통합과 번영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개성공단 잠정중단 조치를 취한 이후 “무엇보다도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이 처한 인도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는 인식 아래 북한과 대화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실타래처럼 얽힌 다른 현안과 분리하여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기 위한 원 포인트 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물밑 접촉으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장과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 간의 면담을 제의하였지만 북한이 거절하자, 4월 25일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근무자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책임 있는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북한 당국에 공식 제의하였다. 북한당국이 회담을 거부할 경우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4월 2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실무회담 개최를 공식적으로 거부하였다. 또한 “철수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신변안전보장 대책을 포함한 모든 인도주의적 조치들은 우리의 유관 기관들에서 책임적으로 취해주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우리 측 대화 제의의 타이밍과 절차를 둘러싸고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어찌되었든 북한이 대화제의를 거부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은 결과적으로 남측이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잔류인원을 귀환시키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였고, 남북 간의 긴장과 대치국면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북한의 거부로 회담이 성사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 정부가 대화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대화 단절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대화를 제의하기에 앞서 4월 1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당국은 개성공업지구 문제만을 떼어놓고 오그랑수를 쓰려고 하지만 공업지구 사태로 말하면 현 북남관계 정세의 집중적 반영”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것은 개성공단의 정상화는 다른 현안들의 진전 여부에 달려 있으며, 개성공단의 폐쇄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에둘러 이야기한 것이다.
대화는 무산되고 양측 근로자는 전원 철수하였지만 남북한 어느 쪽도 ’폐쇄’라는 극단적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의 앞날에 대해 희망을 접을 필요는 없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호흡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보다 큰 틀에서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을 타개하고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새판을 짜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모색과 기싸움
악화일로로 치닫던 한반도 위기상황이 소강상태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이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쟁불사’ 등 연일 도발위협 발언을 쏟아내던 북한도 최근 들어 위협 수위를 낮추고 있다. 우려했던 미사일 발사도 단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4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의지를 표명한 데 이어 당시 서울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북한이 국제규범을 지킨다면 언제라도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후 한국과 미국, 중국 사이의 양자접촉이 이어졌다.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미국 워싱턴 방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중국 방문 등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해 양자 3각 외교가 진행되었다. 2월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중국 측이 제 안한 방북 협의를 거부해오던 북한 또한 우다웨이 대표나 그보다 고위직 인사의 방북을 허용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바 있다. 북한 역시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북한은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국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대화제의에 대해 전제조건을 제시하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떠보고 있다. 북한은 4월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대화의향을 표명하고 있지만 “비핵화의지를 보이라”며 터무니없는 대화전제조건”을 내세웠다고 비난하였다. 북한은 역으로 첫째,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결의 철회와 남한의 ‘반공화국 모략소동’과 같은 모든 도발행위의 즉시 중지 및 전면 사죄, 둘째, 다시는 ‘핵전쟁연습’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담보, 셋째, 남한과 그 주변지역에 들여온 ‘핵전쟁 수단들’의 전면 철수와 재투입 시도의 단념이라는 3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전제조건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그 근저에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원하는 북한의 내심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4월 18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선결조건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천명하였지만, 협상에 관한 북한의 첫 발언이며 북한의 요구에 대해 협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수(initial gambit)라고 평가했다. 같은 날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이 의무와 공약을 준수하겠다는 진지한 의도와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대화에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지만 북한이 대화를 언급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북·미 모두 대화를 언급하고 있지만 당장 대화에 나서기보다 당분간은 대화 시작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는 성명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미 공동 대화제의로 한반도 위기를 풀 새판을 짜자
대화의 전제조건을 둘러싸고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몇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여건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극단적 비난을 자제하면서 대화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지 않고 있다. 또한 키 리졸브에 이어 북한이 위기고조의 명분으로 활용한 독수리 합동군사훈련도 끝나게 되었다. 5월 7일에는 한·미 양국 정상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된다.
북한이 아직은 대화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화의 필요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북한 대표는 “평화롭고 안정된 환경에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주력할 수 없도록 각방으로 방해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경제건설과 핵무력 강화라는 병진전략을 새로운 발전노선으로 제시하였다. 비록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하고 있으나 대내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기약 없이 안보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북한당국으로서도 점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주시하는 가운데 개최되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대면 한다는 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FTA, 전시작전권 전환 등 다양한 현안들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간 다양한 현안에 대해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고 남북관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위기해소를 위해 강력한 대화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대화제의가 공식적으로 포함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과 같이 서로의 대화조건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협상의 의제와 대화의 방식을 협의하기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다 만, 9·19 공동선언 등 기존 합의가 존중되는 틀 속에서 추진하되, 남북대화, 북·미대화 등과 조화롭게 복합적으로 구상해나갈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현안들은 본래적 성격상 다차원적이고 포괄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경색된 남북관계 타개와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의 해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각각 분절된 1차 방정식적 사고로는 풀어내기 어렵다. 고차원의 복합 방정식으로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 한반도 문제, 동북아 평화협력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혜가 발휘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악화될 것도 없는 최저점을 때리고 있다.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고통과 불안감만 안겨주고 민족의 역량만 소진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무모한 버티기 싸움을 거두고 민족 전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큰 마음을 내야 할 때이다. 북한도 선군에 묶인 경색된 자세에서 탈피하여 자신들이 강조하는 경제발전이라는 인민생활 향상의 시각에서 진정한 대화의 길로 나와야 할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그러한 새판을 짜는 희망의 디딤돌을 놓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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