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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78호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함께 가야 한다

조회
14
등록일
2013-06-26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함께 가야 한다

● 불필요한 ‘격’ 논쟁으로 무산된 남북당국자 회담 ● 동상이몽: 서로 다른 ‘비핵화’의 개념 ●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큰 틀에서 함께 다루자

불필요한 ‘격’ 논쟁으로 무산된 남북당국자 회담 

 

6년 만에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회담이 개최를 하루 앞두고 뜻밖의 복병을 만나 무산되고 말았다. 남북 간 실무접촉에서 양측은 회담의 명칭과 날짜, 장소 및 대표단 규모, 이동경로까지 확정했지만, 회담 의제를 둘러싸고 6·15공동선언 및 7·4공동성명 발표일 공동기념 문제와 민간교류 등에서 서로 이견을 보였다. 

 

그러나 회담의 결정적인 무산 원인은 ‘격’을 둘러싼 문제였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남북회담의 ‘격’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들이 ‘격’을 따지지 않고 남북대화에 나선 것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남북실무회담에서 대표단장의 ‘격’ 문제를 합의하지도 않고 쌍방이 따로따로 회담 개최를 발표한 것이나 우리 측이 장관급회담을 제의해 놓고는 차관급을 내보내겠다고 한 것은 여러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아마추어적인 행동임에 틀림없다. 대표단장의 ‘격’ 문제가 과연 회담을 무산시킬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3월 19일 특사 교환을 위한 판문점 접촉 때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협박발언으로 악명이 높은 당시 박영수 북측 단장의 직책도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이었다. 그를 상대한 우리측 수석대표는 송영대 통일부차관이었다. 

 

그동안 남북회담의 역사를 보면, 첫 고위급회담이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부장 간 회담이래 점차 공식적으로는 우리 측 통일부와 북측 조평통이 회담하고, 비공식적으로 우리 측 정보기관과 북측 당기구(통일전선부)가 조율하는 투트랙(two track) 방식이 자리 잡혀왔다. 당이 통일 문제와 남북협상을 주관하는 북한의 체제 특성상 애초부터 ‘격’의 일치는 문제의 초점에서 비켜나 있었다. 

 

남북대화의 ‘격’ 문제가 우리 측 내부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2004년 5월에 열린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 때부터였다. 북측이 우리 측보다 한참 ‘격’이 떨어진다고 보는 40대 후반의 권호웅을 수석대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측은 회담을 보이콧하기보다 제도적으로 이를 시정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10·4정상회담 이후 개최된 남북총리급회담에 와서 ‘격’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던 것이다. 

 

사실 북한과의 협상에서 ‘격’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정전협정 유엔 측 수석대표였던 터너 조이(C. Turner Joy) 미 해군제독은 자신의 회고록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에서 “공산 측과 협상할 팀은 최고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 차선의 팀으로는 절대 안 된다. 계급·명성·직위는 두 번째 고려사항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현안진단」 지난 호에서는 이번 남북회담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미래를 여는 회담이 되어야 하며 ‘형식보다는 실질을 우선’해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누가 회담대표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회담의 결정적 장애가 되지 않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과거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본질적 문제는 제쳐둔 채 회담 결렬로 끝나고 말았다. 

 

 

동상이몽: 서로 다른 ‘비핵화’의 개념 

 

이처럼 남북대화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한반도정세는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외교전으로 넘어가고있다. 지난 5월 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한다는 발언 이후 한반도 비핵화 회담의 재개를 위한 탐색전이 한창이다. 

 

6월 19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장예쑤이(張業遂) 중국외교부 부부장과 가진 북·중 전략대화에서 “6자회담을 포함한 어떤 형식의 각종 회담에도 참가해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를 받아들인 듯한 이 발언은 최근 북한의 태도와 사뭇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은 작년 4월 수정된 헌법의 전문(前文)에 “핵무기 보유국”임을 명시한 바 있고, 올해 3월 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발표하였다. 또 4월에는 미국과 군축회담을 할 의향은 있지만 비핵화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우리가 이해하는 비핵화와는 다르다. 6월 22일 신선호 주유엔 북한대사는 비핵화의 의미에 대해 “비핵화가 북한에만 적용돼서는 안 되며, 한반도 전체 즉 남북한 모두에 미국의 핵위협이 없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란 남북한이 핵무기의 제조, 배치, 사용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 안전보장(NSA·negative security assurance)이 제공되는 것을 가리킨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핵태세보고서(NPR) 2001」에서 북한·이란·이라크 등 ‘악의 축’ 3국과 시리아·리비아 등 불량국가들에 대해 핵무기 선제공격을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뒤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를 완화한 「핵태세보고서 2010」을 발표했으나, 핵무기를 제조했거나 제조하고자 하는 북한과 이란에 대해 여전히 선제핵공격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소극적 안전보장의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과 한국·미국 등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협상의 진전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핵화’ 개념에 합의해야만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공통점에 기초해서 대화를 시작한 뒤, 협상의 진전에 따라 최종국면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큰 틀에서 함께 다루자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6자회담의 재개를 둘러싸고 관련국들의 탐색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6자회담의 재개 조건을 놓고 북한과 한·미·일 3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태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이 조건 없는 6자회담의 재개를 요구하자,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북한이 요구한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비핵화 조치, 이른바 ‘2·29+α’를 취해야 한다는 기준을 공동으로 제시했다. 작년 2월 북·미 양국은 미국이 북한에 24만 톤의 식량을 제공하고,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중단, 핵·미사일 실험의 유예,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의 입북 허용을 약속하는 ‘2·29합의’를 발표했었다. 

 

우리 측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보고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북·중관계가 혈맹관계에서 일반 국가관계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정책의 우선순위도 평화·안정에서 비핵화로 옮겨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월 18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축전에 답전을 보내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안정의 우선순위를 변경했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어느 한 편을 강조하는 ‘표본겸치(標本兼治)’1)의 입장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기대하면서 남북대화의 재개 노력을 뒤로 미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문제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처럼 절반의 성공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단지 한·중 공조를 통해 북한이 핵문제에서 좀 더 양보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공조를 이루고,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 6자회담을 다소 유리하게 이끌어낸다고 해서 단기간 내에 북핵문제의 해결을 이룰 수 없다. 즉,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되기 어렵다. 미·중 강대국의 협조는 어디까지나 좀 더 유리한 환경 속에서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는 데까지 기능하는 것일 뿐, 결국은 우리가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결합해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문제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지만, 남북관계 발전이 없이는 비핵화의 실현도 기대하기 힘들다. 앞으로 한반도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우리가 먼저 큰 그림을 그리고, 이에 따라 주변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남북대화와 이를 통한 남북관계 발전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1) 드러난 문제(한반도 비핵화)와 본질적 문제(한반도 평화·안정)를 함께 다루어 나간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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