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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진단 359호

북한 ‘조한관계론’ 유감, 긴 호흡으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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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8
등록일
2025-08-11

북한 ‘조한관계론’ 유감, 긴 호흡으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할 때

북한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수용하면 평화통일을 규정한 헌법과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북한에 대한 우리의 모든 권리와 의무도 자동으로 소멸된다. 유사시 북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직접·자동 개입할 수 없고, 탈북민의 경우도 일반 난민의 지위를 지니게 될 뿐이다.

 

이재명 정부의 전방위적 남북관계 개선 행보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접경지역을 방문하고 9·19 군사합의 복원과 대북전단·오물풍선 상호 중단을 통해 접경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우선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소통 채널 복원 그리고 남북 교류·협력 재개를 모색하겠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11일, 군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접경지역 전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으며, 8월 5일 최전방에 설치된 20여 개의 고정식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다. 북한도 즉각 대남 소음 방송을 중단했으며 대남 확성기 철거에 나섰다. 북한의 소음 방송은 지하철 수준의 굉음으로 그동안 접경지역 주민이 받은 피해와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중단 조치는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가정보원은 이종석 원장 취임 직후인 7월 초부터 대북 라디오 방송 5개와 TV 방송 1개를 차례로 중단했다. 북한도 대북 방송에 대응해 취했던 방해전파 송출을 대거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일부 방해전파를 유지하는 것은 군과 민간단체의 대북 방송 그리고 kbs의 한민족 방송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이미 대남방송을 중단한 바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 대화 재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으며, 취임 전부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6월 2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에게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청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정 장관 취임 이후 통일부는 ‘북한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을 폐지해 민간 대북 접촉을 제한하는 근거를 없앴다. 정 장관은 8월 4일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장단과 면담을 갖고 남북협력기금 지원 재개를 약속했으며, 통일부는 지원 범위를 보다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또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예방하고 남북 화해에 조계종의 역할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6월 13일 접경지역을 방문했으며, 이는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중단된지 하루 만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 전방위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이 같은 행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한관계론’으로 응답한 북한

 

 이재명 정부의 전방위적 남북관계 개선 시도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7월 28일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서였다. 김 부부장은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50일 만이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조한관계’라는 표현이다. ‘조한관계’는 남북한의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과 대한민국(ROK)간의 관계’, 즉 나라 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은 우리를 지칭할 때 북한식 표현인 ‘북남관계’, ‘남조선’, ‘남반부’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을 전쟁 중인 주적관계로 전환하고 통일, 민족 개념 삭제를 지시한 이후 우리를 ‘괴뢰 한국’, ‘대한민국’ 등으로 표현해왔다. 최근에는 ‘괴뢰’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괴뢰’ 표현은 서로 정통성 시비를 가릴 때 상대방을 비하하는 의미라는 점에서 암묵적으로 남북한이 하나라는 공동체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한관계’는 남북관계를 대체한 개념으로 남북한이 각각 개별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표현은 이제 남북이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민족공동체가 아닌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완전히’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다시 민족관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대북 확성기 방송 및 전단 살포 중지와 개별관광 허용 검토 등 이재명 정부가 취한 대북 유화조치들을 열거하며 ‘성의 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김 부부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남북 화해·협력 제안과 일각에서 제기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김정은 위원장 초청설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김 부부장은 이 같은 모든 조치들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며 통일부를 해체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우리 정부의 ‘흡수통일이라는 망령’이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은 우리 정부가 어떤 정책을 수립하고 어떤 제안을 해도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못 박았다.

 

 김 위원장이 이미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선언하고 관련 조치를 체계적으로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김 부부장의 담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남북이 서로 통일의 대상이 아닌 완전한 타국관계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김 부부장의 담화는 남북관계의 전면적 거부이지만 남북 간 국가 대 국가로서의 외교관계 수립의 여지는 남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동안 표류 북한 어민 송환과 북한 주민 시신 인도 요청 등의 제안에 북한이 일절 응하지 않았던 것도 대화 주체가 통일부였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미 통일전선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접촉 기구를 모두 폐지했기 때문에 우리 통일부의 대화상대가 북한에는 없는 셈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인내와 창의성이 필요한 때

 

 글로벌 정치, 경제, 안보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 완화는 시급한 과제이며, 남북 간 대화채널의 재가동도 급선무다. 구조적인 경제난의 지속과 러시아에 대한 병력 및 군수물자의 제공으로 일종의 안보 공백 상태인 북한으로서도 한반도 긴장 완화는 불리한 선택지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한 ‘9.19 군사합의’의 경우, 한국군에게 유리한 정찰 감시 능력을 제약한다는 일부 비판까지 제기되었던 점에 비추어 북한이 마다할 일이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에도 대화채널을 통해 포로 및 전사자 교환 그리고 필수적인 의사소통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남북을 전쟁관계로 전환했다고 해도 남북 간 대화채널 필요성은 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에 북한이 당장 응하는 것이 마땅하며, 대화한다고 해서 2국가론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암묵적인 외교관계 수립 의도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2국가론은 평화관계의 정착이 아닌 적대관계로의 전환과 한반도 전쟁의 상시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69년 동독을 부정하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서독의 정통성에 입각한 전독부(全獨部) 명칭을 중립적인 내독관계부로 변경했지만 양독관계의 특수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북한은 완전한 타국관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독의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해 남북이 하나의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정권도 같은 입장을 견지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이유이다. 

 

 북한은 6.25를 조국해방전쟁이라 명명하고 7월27일 정전협정체결일을 전승절로 기념해왔으며, ‘조국광복=김일성 업적’으로 선전해왔다. 1994년 6월 사망 직전 김일성 주석은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으며 김영삼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민족과 통일은 그동안 북한 체제의 핵심 가치였으며,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에 해당한다.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은 대한민국 헌법은 물론 김일성·김정일 노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다.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은 체제경쟁의 실패로 인한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 2018~2019년 남·북·미 정상회담 성과 부재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무모한 대북 강경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남북한이 각각 유엔에 가입한 국제법적 별개의 국가라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수용하게 되면 평화통일을 규정한 헌법과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북한에 대한 우리의 모든 권리와 의무도 자동으로 소멸된다. 유사시 북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직접·자동 개입할 수 없게 되며, 탈북민의 경우도 특수관계의 적용이 아닌 일반 난민의 지위를 지니게 될 뿐이다. 

 

 국제질서와 남북한의 여건을 고려할 때, 근 시일 내 통일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특히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방식으로는 더욱 실현되기 힘들다. 평화통일을 미래완료형 장기 과제로 미루되 남북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상호 신뢰를 형성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한 점을 상기할 때다. 

 

 통일에 대한 여론과 지지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민들은 통일의 당위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한반도 2국가론이 부상할 경우 우리 사회 내 감당하기 어려운 소모적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평화통일의 지향은 헌법상 의무이자 권리이며 남북 민족관계는 일개 정권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교착 국면 타개를 위해 노력하되 단기적 성과 도출을 우선해 근본 원칙을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을 설득하고 우리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무력통일과 흡수통일이 아닌 장기간의 화해·협력을 거친 합의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며, 통일국가의 최종 형태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라는 점을 북측이 재인식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민족과 역사를 부정하는 반통일, 반평화 인식을 버리고 다시 평화와 화해의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진정 북한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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