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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44호

트럼프 2기 한·일관계 전망과 대일외교 과제

조회
313
등록일
2025-01-24

트럼프 2기 한·일관계 전망과 대일외교 과제

바이든-기시다-윤석열의 조합으로 지난 2년 남짓 전개되었던 동아시아 국제정치도 크게 변화할 전망이다. 미국이 후원하고 한·일이 호응하여 만들어진 한·미·일 협력의 기제가 이 지역에서 얼마나 공공재로서 기능할지 불투명해졌다. 일본은 이미 이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2기에 대비한 일본의 외교 포석

 

 12.3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 정국에 돌입한 이래 50일이 지났다. 일국의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 절차에 저항하면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대량의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외교 면에서도 세계보건기구(WTO)와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재탈퇴하는 등 그의 미국 우선주의(MAGA)가 가져올 세계질서 재편의 기운이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바이든-기시다-윤석열의 조합으로 지난 2년 남짓 전개되었던 동아시아 국제정치도 크게 변화할 전망이다. 미국이 후원하고 한·일이 호응하여 만들어진 한·미·일 협력의 기제가 이 지역에서 얼마나 공공재로서 기능할지 불투명해졌다. 일본은 이미 이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트럼프 대비 외교는 2023년에 벌써 개시되고 있었다. 

 

 2023년 10월 24일 주미·주러·주중 대사가 동시에 교체 임명되었다. 이들의 이력을 보면, 이미 이 시점에 일본 정부가 트럼프 복귀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주미 대사는 트럼프 1기 정권 때 일본 국가안보국 심의관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당시 국장이 북·미관계가 진전될 때마다 볼턴을 창구로 삼아 백악관에 훈수를 두던 야치 쇼타로(谷内正太郎)인데, 야마다는 야치의 지휘 하에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야마다가 하마평에 오르자, 일본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자자했다. 

 

 주러 대사로는 무토 아키라(武藤顯)가 발탁되었다. 외무성 내 러시아통이다. 도쿄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러시아 관련 부서와 직책을 돌며 러·일 경제관계를 주특기로 해 왔던 사람이다. 러시아어에도 능통해서 통역 없이 러시아어로 협상이 가능한 인물이다. 그런 한편 2018년에는 주미 공사로 근무하며 트럼프 시기 대미 외교의 전선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에 부임 후 일본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와의 사회문화 협력 증진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곤 했다. 

 

 작년 11월 5일에는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한 무토 대사가 푸틴과 대화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무토 대사는 이 자리에서 일왕의 친서를 전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나눈 이야기일 수 있다. 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날 그가 행한 인터뷰에서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바로 러·일 간에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이틀 후 푸틴은 발다이그룹 토론에 나서 이에 화답했다. 일본에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과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무토 대사 임명 또한 트럼프 2기에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중 대사로 임명된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의 이력으로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대양주국장 경력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겸하면서 북핵, 미사일 문제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다. 2018년과 2019년에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는 현지에 파견되어 정보 수집 및 분석을 총괄했던 경력이 있다. 이를 고려하면 중국 근무 경력이 없는 가나스기를 주중 대사로 임명한 것 또한 트럼프 2기에 북·미 대화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포석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외교의 중심 이동: ‘한·미·일’에서 ‘글로벌 사우스’로

 

 한편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펼쳤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즉 일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노선과 다른 트럼프 후보의 주장에도 대응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후보시절이던 2023년 3월 16일 ‘제3차 세계대전의 저지(Preventing World War III)’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아젠다(Agenda) 47’은 가장 주목받는 공약 가운데 하나다. 그 내용은 미국의 글로벌리스트-네오콘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서, 그의 외교정책 기조가 바이든의 그것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게 해 주었다. 

 

 이 시점에서는 아직 일본 정부가 이에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 한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을 열고, 과거사 문제를 봉인하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노선의 길을 열고 있었다. 기시다의 발언에서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2023년 5월의 히로시마 G7 직후부터였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정상회담 성과를 자랑하고 있을 때, 일본 외교의 초점은 미·중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줄을 서지 않겠다는 국가들로 구성되는 글로벌 사우스 그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2023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한국과 일본의 논조는 극명하게 갈렸다. 19일 기시다 수상이 가치 외교를 부정하고, 글로벌 사우스에 배려하여, 자유와 법의 지배에 더해 포섭성, 개방성, 다양성 등의 이념을 강조하고 있었던 데 반해, 20일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를 위한 가치 외교의 선봉을 자처하고 있었다. 이후 일본 외교는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분단을 용인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한다는 지향을 보이고 있었다. 권위주의 체제로 분류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외교상대로 존중하는 모습이다. 

 

이시바 대외정책의 현장: 중국, 러시아, 북한

 

 2024년 여름 기시다 수상이 자민당 총재선에 나서지 않을 뜻을 비친 뒤 탄생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내각은 기시다 내각의 외교를 계승하면서도 더 유연하고 확장된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시바 내각이 올해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른 다음 정권이 안정된다면, 일본 안에서 글로벌리스트-네오콘(친미우익 동맹파)들이 퇴장하거나 변신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에 나서고, 이시바가 북·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한다면 동아시아에서 다극화 추세는 가속화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본도 적응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일 관계, 한·미·일 관계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상유지에 노력하면서도 중·일 관계에서 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시바를 정계에 입문시킨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다나카는 중·일 국교정상화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이시바 수상은 작년 10월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리창 국무원 총리와, 11월에는 APEC에서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중국 측도 이에 호응하여, 작년 하반에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완화, 일본인 단기체류비자 면제 등 관계 개선에 나서는 조짐이 보였다. 12월에는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외상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를 전후로 일본은 중국인 관광객에게 비자발급 완화 조치를 취했다. 이와야 외상이 방한했던 지난 1월 13일에는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간사장이 중·일 간 여당 교류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중했다. 이는 6년 만의 일이다. 

 

 한편 이시바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를 내다보며 일본에서 널리 퍼져 있던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타이완”이라는 구호에 비판적인 인식을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구호가 냉정함을 결여한 위기감만 부채질하고, 지나친 군비 확장을 유발하여 예산 규모만 부풀리게 하는 상황을 만든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 정부로서 불성실한 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아젠다로 삼는 데 대해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북·일관계다. 이시바는 자민당 총재선 출마 때 기자회견을 갖고,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북·일국교정상화촉진의원연맹 간부 및 회원들과의 긴밀한 관계도 그의 특징인데,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외상, 나카다니 겐(中谷元) 방위상 등 의원연맹의 중심 회원들을 내각과 자민당의 주요 보직에 임명하고, 북·일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북한에 납치된 피해자들의 가족이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구상에 반대를 표명하자 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지난 11월 23일 납치 피해자들이 개최한 집회에서 그는 “수상의 전략적인 결단과 실행이 시대를 움직인다”며 북·일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 구상을 강조했다. 나아가 2002년 북·일평양선언의 원점에 서서 ‘대국적 견지에서 22년 전에 그렸던 구상’을 실현해 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트럼프-이시바 조합과 한·일 관계

 

 이시바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 등 이웃 국가들에 대해 사죄와 반성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아베에서 기시다로 이어지는 일본의 대한 정책과 차별을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시바 내각 하에서 일본 외교가 강경 보수-우익과 결별하고 보수-리버럴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이시바는 트럼프 2기 출범을 계기로 하는 국제질서 변환 가능성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동맹 조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 이시바 내각 탄생은 일본 국내적으로는 아베 정치를 종식시키고, 국제적으로는 신냉전을 회피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에게는 트럼프 2기를 의식한 이시바 내각의 외교 구상을 남북한 대결구도 완화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일 관계의 안정적 발전과 함께, 러·일 관계를 관리하고 중·일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이시바 내각과의 협력은, 기시다-윤석열 조합의 한·일 관계와는 다른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침 올해는 한·일국교정상화 60년의 해로서 한·일 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뉴라이트를 전면 배치시켜 식민지배의 성격에 대한 일본 측 해석에 접근하던 윤석열 정부가 급기야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며 비상계엄 선포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대위변제’ 해법을 제시한 이래 강화되던 1965년 체제에 이미 배태된 현실이었다.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비상계엄 하에서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과거사를 봉인하고 동북아시아의 분단과 남북의 군사적 대치를 온존 강화시키는 기제가 되어 왔다. 

 

 이 점을 상기하면, 한·일 국교정상화 60년을 맞는 올해가 한·일 관계 대전환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관건은 올해 일본과 한국의 국내정치다. 이시바 내각은 출범 직후 치른 총선거에서 패배하여 자민당은 소수여당으로 전락한 상태다. 이시바 내각이 안정적 정권 기반을 창출하는지 여부는 올해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가 가름해 줄 것이다. 

 

 그 전에 이시바 내각에게 세 차례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고비는 3월 말까지 의회에서 전개될 예산안 심의다. 입헌민주당에 위원장 자리를 내어준 예산위원회에서 예산안이 부결되면 이시바 내각은 총사퇴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예산안이 겨우 가결되어도 내각 지지율이 저공비행을 할 경우,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시작될 수 있다. 이를 견디어낼 수 있는지 여부가 두 번째 고비다. 이시바가 자민당 총재 자리를 유지하면서 참의원 선거에 임하게 되더라도 야당이 단결하여 내각불신임 결의안을 내면, 이시바는 중의원 해산으로 항전을 시도할 수 있다. 이 경우 7월 중참의원 동시 선거의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면 2009년 이래 16년 만에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다.

 

 이시바 수상이 이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내면 다져진 정권기반을 기초로 그의 ‘지론’을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북·일 정상회담 실시가 그 하나다. 이를 실현하려면 미국이 이에 반대하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며, 한국의 협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새 정부의 대응전략: 한·일 관계-남북 관계 연계전략

 

 여기에서 만약 한국에서 탄핵국면이 정리되고 새 정부가 탄생된다면 새 정부의 대일정책이 또 하나의 관건이 된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한 수정 요구가 크게 일어날 것이 예상된다. 구체적으로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대위변제’ 방안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접근이다. 

 

 이때, 우리 새 정부의 대일외교에 고도의 전략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대법원 판결의 이행이라는 직선적인 해결을 서두르게 되면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대화 공간을 차단해 버릴 수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탄핵 이후 탄생할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 때처럼 ‘반일’을 기조로 그동안의 모든 대일외교를 총체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응해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와 관련한 한·일 기본조약 제2조 해석 문제를 제기하여 과거사 문제를 장기적 과제로 설정하고 역사대화를 복원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방법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원칙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북·일 관계에 대한 일본 측의 관심을 한·일 관계 진전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지혜도 동원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벌써 북·미간 대화 가능성이 부상했고, 일본이 긴장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개 국가’로 남북관계를 규정한 것은 그 논리적 외연에 미국, 일본과의 정상적 국가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남북관계를 선도적으로 변화시켜 미·일의 대북관계 변화 시도와 연계한다면 우리의 전략 공간도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의 실천 전략은 북한의 논리와 실천이 가져올 현실을 직시하고 수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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