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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08호

국제정세 변화를 직시하고 대화의 문을 열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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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8
등록일
2023-06-29

국제정세 변화를 직시하고 대화의 문을 열어놔야

정부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담대한 구상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핵포기 전까지는 현재의 압박과 강경대응을 계속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변화는 한 가지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압박과 강경 대응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현재 정부가 처한 딜레마다. 정부는 지금의 외교 전략과 정책 방향이 어떤 변화에도 융합적이고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총점검해야 할 것이다.

미·중 관계,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으로만 치닫던 미·중 관계가 디리스킹(de-risking, 리스크 해소)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디커플링 주장이 강하지만, 미·중 충돌의 위험을 완화, 제거해야 한다는 디리스킹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디리스킹 주장은 주로 미국 경제계에서 나온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5월 26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적대적인 태도는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블룸버그 TV에서 “기업환경을 냉전시대보다 어렵게 만든다. 디리스킹에는 찬성하지만 디커플링에는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5월 30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중국 CATL 쩡위췬 회장과의 식사 만남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 같은 5월의 분위기는 6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정찰풍선 사태 이후 급랭했던 양국 외교 관계가 재개된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모두 블링컨 장관의 방중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재닛 엘런 미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존 케리 기후특사 등의 방중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렇듯 미·중간에 외교적 대화 채널이 조금씩 복귀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대화 재개 움직임을 두고 미국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용이라는 지적도 있고, 대만 문제를 비롯해 여전히 미·중간에 첨예한 갈등을 빚는 현안도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일단 대화 채널이 활발히 복원되고 있다는 흐름이 중요하다.


미·중 대화 채널 복원 현상은 과거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진행된 미·중 관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이른바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를 이끌었던 미국 내 세력은 미국기업들이었다. 미국기업들은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진출을 위한 전 방위적 로비를 전개했고, 중국 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 기간 안보를 우선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해서 미·중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에서 상호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던 양국은 미국의 국채 매각 문제를 놓고 의견이 충돌했다. 이때만 해도 차이메리카가 분열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중동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에너지와 자원 확보에 주력했고,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으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의 자유항행을 놓고 중국과 대립을 시작했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중 대결은 격화되기 시작했고, 미국 내 안보우선 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한 패권경쟁의 심화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미·중 양쪽 모두 부담이 커지고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초래되자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전기 마련이 필요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중간의 디리스킹 움직임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고 다시 디커플링을 가속화할 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대결 일변도 구도에 변화의 흐름이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화를 모색하는 일본과 반응하는 북한


한편 일본 기시다 총리는 5월 27일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는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틀만인 29일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대국적 결단을 내린다면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했다. 기시다 총리는 6월 8일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 의지를 재차 밝혔다. 북한은 외무성 연구원의 글을 통해 일본이 실현 불가능한 납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전제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언급하는 일본 당국자(기시다 총리)의 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일 대화의 부정적 기류로도 볼 수 있지만, 전제조건이 없는 대화를 강조한 것은 일단 대화에 방점을 찍으면서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분위기는 뜬금없이 기시다 총리가 북한과의 대화를 들고 나오는데 대해 다소 의아해 하지만,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북·일간에 납치 문제는 넘기 힘든 장벽으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원하고, 북한은 납치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이라는 종래 입장을 견지하면서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고 있다. 상호 대화 재개의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예고했던 일자보다 조금 늦은 6월 16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평가하는 회의였는데, 두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평가한 점이다. 실패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빠른 시일 내에 위성 발사를 재개할 것임을 알렸다. 다른 하나는 현역에서 은퇴한 것으로 추정됐던 김영철 통일전선부 고문이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김영철은 2022년까지 북·미 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등을 실무 책임자로 추진했던 인물이다.


김영철의 복귀를 놓고 북한이 다시 대화를 위한 방향 선회를 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지니고 있는 강성 이미지와 같이 강경 대응을 지속할 것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런데 일본과의 채널은 통전부의 일본라인이라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통전부는 대남 및 해외교포를 담당한다. 특히 일본의 조총련은 통전부의 일본라인과 연결되어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시절 고 정주영 현대회장의 방북을 성사시킨 채널도 통전부의 일본라인이었다. 남북 간에 대화 채널이 전혀 없던 시절에 통전부의 일본라인과 연계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은 결국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또한 북한은 5월경부터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대응은 최소화하는 한편 말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이상 지속되어 온 미사일 발사 등 강경 대응 일변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한 태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일 정책공조의 강화와 강경한 대북 압박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의 분위기를 북한이 읽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외교도 대북정책도 외곬으로는 안 된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국 방문 시에 이례적으로 북한 문제를 별도로 언급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미국의 입장을 반복한 것이지만, 최근의 변화 움직임과 연계해 볼 때 단순히 미국 입장의 반복으로만 넘길 문제는 아닐 듯하다. 블링컨 장관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을 고수했지만, 대만과 북한 문제를 별도로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대만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모종의 제안을 함과 동시에 북한 문제를 언급했을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여기에 일본 기시다 총리의 두 차례에 걸친 대화 언급도 미국의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가 서서히 대화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에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담대한 구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핵포기 이전까지는 현재의 압박과 강경대응을 계속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변화는 한 가지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압박과 강경 대응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현재 윤석열 정부가 처한 딜레마다.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본 틀을 유지한 상태에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고 그에 따라 이합집산도 이루어진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만을 지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오히려 이를 활용해야 한다. 한·미·일 정책공조가 강화될수록 그 안에서 적절한 역할 분담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것도 필요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한 가지 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 관계를 외곬으로 이해하면 언제나 덜떨어진 피해국으로 남는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정부는 주변 정세의 흐름을 눈여겨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뿐 아니라, 지금의 외교 전략과 정책 방향이 어떤 변화에도 융합적이고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총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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