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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진단 309호

헌법정신에 따른 통일부 본연의 역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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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8
등록일
2023-07-08

헌법정신에 따른 통일부 본연의 역할이란

정부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담대한 구상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핵포기 전까지는 현재의 압박과 강경대응을 계속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변화는 한 가지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압박과 강경 대응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현재 정부가 처한 딜레마다. 정부는 지금의 외교 전략과 정책 방향이 어떤 변화에도 융합적이고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총점검해야 할 것이다.

종전선언이 반국가세력의 합창?


윤석열 대통령은 6월 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행사에서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라고 비판했다. 북한 침략 시 유엔사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라는 논지다. "자유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라는 인식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이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 종전선언을 처음 언급한 것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종전협정 체결의사를 밝히고 남·북·미 정상이 서명할 것을 비공개로 제안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7년 9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서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해 10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핵문제 해결을 위해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2018년의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은 주요 화두였다. 4.27 판문점 선언에는 2018년 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전환, 그리고 이를 위해 3자 또는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트위터에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으며,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2019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한국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종전선언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흔드는 반국가세력이 주장하는 것이라는 논리는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대북지원부’로 전락한 통일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 차관, 그리고 통일비서관 등 통일·대북 정책을 이끌어가는 핵심라인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으며, 이들은 모두 통일부 내부 출신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인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일 그동안 통일부가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달라질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향후 통일부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장관과 통일비서관 내정자는 학자이며, 차관 내정자는 외교관으로 통일부의 업무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과거 김정은 정권 타도를 강조하고, 흡수통일론에 해당하는 '1체제 통일'을 주장한 바 있다. 통일부 장관 내정 직후 과거 입장에 변함없느냐는 질문에도 "통일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권영세 장관이 강조해 온 '통일정책 이어달리기'에 대해 남북 간 합의의 선별적 고려 입장과 아울러 북한의 도발을 전제로 9·19 군사분야합의서의 파기 가능성도 내비쳤다. 외교부 출신 통일부 차관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당할지 의문이며, 통일비서관 내정자의 통일 분야 경력도 풍부하다고 보기 힘들다. 기존 통일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불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대북지원부’ 역할은 정부조직법에 의한 통일부의 기본적인 업무의 영역이며, 진보와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견지되어온 기조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124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에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구분하여 지속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한 발 더 나가 국정과제 95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 도모’에는 “인도적 지원을 조건 없이 실시”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강조했는데 그 같은 헌법정신을 관철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안에 통일부를 두어 북한과 대화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도록 임무를 부여했고, 대북지원도 그 범위 안에서 작용하는 가능한 수단이었다. 통일부의 본연의 역할은 바로 이 헌법정신을 구현하는데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통일부 창설 이래 반세기 넘도록 대북지원이 자유민주적 평화통일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진 정부는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자가당착


윤 대통령의 언급대로라면 미국의 조지 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한국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종전선언을 노래한 반국가세력이며 허황된 가짜평화를 부르짖은 셈이다. 종전선언은 북한 핵문제 해결의 장기성과 복합성,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특수성을 감안해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을 분리하자는 실용적 아이디어 차원에서 다루어져 왔다. 종전선언은 정치선언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입구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유효한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한 주한미군과 유엔사를 포함한 한반도 정전체제의 주요 요소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종전선언은 70년을 끌어온 한반도 전쟁의 비정상성을 종식하고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종전선언 도출을 위한 노력이 반국가세력의 작태라면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말인가?


통일부는 엄연히 북한이라는 실체적 대상을 마주하는 정부기관이다. 통일부의 수장이 김정은 정권 타도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부처의 존재 이유가 없는 셈이다. 안보 현실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타 부처의 임무이며, 국제사회에서의 남북관계는 외교부가 맡으면 될 일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헌법에는 엄연히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되어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7·4 남북공동성명이 강조한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해야 한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이며, 국제적으로는 남북관계도 외교관계에 해당한다. 헌법과 국제법상의 간극을 해결하기 위한 잠정적 조치가 남북 특수관계의 설정이며, 이를 부정할 경우 남북관계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윤 정부는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남북합의를 선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 역시 위험하다. 남북 간 합의는 사실상 국가 간 합의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남북 간 합의사항을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합의의 무효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남북 간 합의사항은 냉전체제에서도 남북 간 긴장을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아직도 다양한 분야에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남북 간 합의사항을 유지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가 될 수 없으며, 통일의 길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맞대응


지난 6월 노동당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대남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철이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복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각별하게 챙겼던 스승 현철해 전 인민군 차수의 마지막 직함이 국방성 고문이었다는 점에서 김영철의 직함은 예우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현정은 현대 회장의 방북 시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북한 외무성이 입장을 밝힌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7월 1일 담화에서 남측 인사의 방문에 대하여 검토 의향이 없으며, 그 누구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으며, 이러한 원칙과 방침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의 북측 상대편이었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물론 그동안 남북관계를 관리해온 대남기구들의 역할이 없어졌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남북 특수관계를 반영해 사용해온 입경, 출경이 아니라 입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외국과의 관계를 암시한 점도 눈에 띈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규정한 것은 그동안 현대와 체결된 양측 간 합의사항의 무효화 의도로 볼 소지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전승절 기념 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극악무도한 동족 대결 정책과 사대 매국”이라고 비난했으며, 8월에는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남측을 “절대로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9월 하순 이후에는 대남 모의 핵공격까지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김여정 부부장이 2021년 3월 담화에서 존재 이유가 없다며 ‘정리’를 경고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후 활동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북측 나름으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기구이고 우리 쪽 통일부의 북측 상대기관이다. 남북 강대강 대치국면에서 양측의 남북관계·통일 관련기관의 위상이 추락하는 양상이다. 남북 양측이 특수관계에 대한 합의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는 국제법의 적용을 받는 국가 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책무를 잊지 말아야


2023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다. 한반도는 아직 국제법적으로 전쟁 중이며.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의 사령관이 체결한 정전협정과 이에 기반을 둔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정전협정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에는 정전협정 효력 발생 3개월 내에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니 70년 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정전협정기념일을 전승기념일로 포장해 요란한 행사를 준비 중이고 윤석열 정부는 대북 강경파들로 대북·통일 진용을 구성했다. 정전 70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같은 민족 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교훈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이 아닌 대화와 외교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이 강경한 대치국면을 지속할 경우 그 끝을 알기 어려우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원치 않는 우발적 충돌이다. 당장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마지막 보루인 9.19 군사분야 합의마저 위태로운 양상 아닌가.


초심으로 돌아가 헌법에 명시된 평화통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때이다. 일촉즉발의 첨예한 냉전의 시기에 왜 7.4 남북공동성명이 도출되었으며,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해야 한다는 점에 남북이 합의했는지를 직시할 일이다. 정전 70주년을 기념하기보다 부끄러워할 일이며, 이제라도 다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향한 진정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문제 피로감을 이용한 갈라치기로 진영 내 지지기반 강화에 몰두할 일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의 평화와 통일을 책임진 통수권자로서 국내외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일 통일을 포함해 세계사에서 보수정권이 평화를 향한 결실을 거둔 사례는 적지 않다. 통일부가 그 존재이유에 맞게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바른 길이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 프리미엄을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동력으로 활용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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