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정전상태, 언제나 지속가능한 평화를 보게 될까
지정학적 조건과 분단구조를 감안할 때, 글로벌 흐름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실용적인 외교 옵션을 가능한 한 많이 유지해야 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상위 원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국제정세의 흐름을 보면,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와 함께 ‘외교의 시간’으로 항로를 변경할 것이 예견된다. 그동안 국제질서의 신냉전 전환에 대비해서 가치외교를 내세우고 질주해 왔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흐름이 대화국면으로 전개될 때에도 대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전 70년, 여전히 불안정한 한반도 평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 1953. 7. 27)’이 체결된 지 70년이 되었다.
이 협정의 핵심 의무조항은 체결 당시의 전선을 휴전선으로 하여 전투행위를 멈추고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와 3개월 안에 평화체제 설립논의를 위한 정치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피해와 희생을 치른 채 전쟁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했고,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를 위한 제네바 극동평화회의(1954. 4)도 성과 없이 끝났다.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에는 평화체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더구나 최근 30년 동안은 정전체제도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상태로 정전이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측 대표를 미군 장성에서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한 데 반발하면서 정전협정 유지관리 핵심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1991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유엔군-북한군 장성급회담이 군사정전위원회 노릇을 사실상 대신하고 있다.
그 뒤로 남북관계가 파탄을 맞이하면서 북한은 아예 정전협정 백지화까지 선언(2013. 3. 5)한 상태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정전상태는 법·제도적 장치가 취약한 상태에서 사실상 군사적 힘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남북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끝 모르는 경쟁 속에서 매우 불안하게 평화를 지켜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미동맹이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는 워싱턴선언(2023. 4. 26)에 따른 핵협의그룹(NCG)을 개최(7. 21, 서울)하면서 전략핵잠수함(SSBN)을 노출(7. 18 ~ 21, 부산)시키자, 북한 국방상은 미군 전략핵잠수함의 부산기항을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핵위협’이라며 미군 전략자산의 잦은 등장은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대해 한·미동맹은 북한의 어떠한 핵공격도‘즉각적·압도적·결정적 대응’에 직면하고 이는‘북한 정권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전 7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불안한 평화 70년, 한국은 빈곤한 개발도상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경제적으로 선진국 그룹에 들었고, 북한은 민생을 희생하면서 고생고생 끝에 결국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군사적으로 전략국가임을 선언했다.
70년 전 시점에서 한반도의 이러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이 변했고 강산도 여러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으며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하나는 한반도가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큰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며, 또 하나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남북한 정권의 대립구조에 기초한 분단체제이자 현실적으로는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는 정전 질서이다. 둘 다 우리 외교안보의 취약점이다.
우리는 견결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며 개방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북한은 자주와 자립의 노선을 견지하며 경제를 희생하면서 절대무기라고 하는 핵무기를 손에 넣었지만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을 자초했다.
핵무기를 통해 활로를 열어보려는 북한의 노선이 가진 한계와 위험은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한·미동맹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우리의 노선도 여전히 불안정한 기초 위에 서있다. 한반도 평화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도 지난 70년처럼 불안정하나마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우리 위상(G7 확대정상회담 초대)을 고려하면 글로벌 안보에도 적절한 역할이 요구(NATO확대정상회담 초대)되는 것은 불가피하고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한 점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레버리지가 확충되고 다양해질 가능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냉전시대와 달리 현재의 국제질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냉전기에는 우리가 중·러와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글로벌 안보질서 강화와 한·미동맹의 대북억제력 강화가 일치했지만, 지난 30년간 탈냉전을 거치며 중·러는 우리와 국교를 맺고 경제관계를 확대해 왔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 입장에서 국제공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최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세계화 흐름이 후퇴하고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와 대다수 나라들의 각자도생으로 국제질서가 복잡하고 매우 유동적으로 흐르고 있어, 우리 입장에서 국제공조를 단선적으로 말하기가 더욱 어려운 처지로 되고 있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영원한 친구나 적이 없다는 언급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지침이기도 하다.
국내외 상황이 힘들고 복잡할 경우 외교에서 원칙이나 이념을 내세우며 외교 상상력의 빈곤이나 무능을 덮기는 쉽다. 그러나 지정학적 조건이나 분단구조를 감안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글로벌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실용적 시각에서 외교 옵션을 가능한 한 많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상위 원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제공조나 민족공조에 앞서 여야공조부터
심각한 미·중 경쟁구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 대 러시아의 대치국면을 보며 이것이 향후 지속적으로 강화될 국제질서로 예상하고,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이로 인해 세계가 두 개 진영으로 쪼개 질 것(De-Coupling)이며 한반도에도 과거 냉전시기처럼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구도가 형성될 것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질서가 중국과의 관계단절이 아니라(이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중국발 불확실성과 위험요소를 없애는데 집중해야 한다(De-Risking)는 선으로 완화되면서 신냉전 주장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
디리스킹 개념은 중국에의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면서도 협력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EU의 입장이 담긴 것으로(2023. 3. 30, EU 집행위원장의 중국 방문 연설), 즉시 미국이 지지 입장을 밝혔고(4. 27, 국가안보보좌관) 곧바로 G7 회의(5. 21, 히로시마)가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미·중간의 극한 대립에 속도 조절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미 국무장관이 최근 베이징을 방문(6. 18 ~ 19)하고 중국 주석과 회동했다. 이어서 미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특사, 미국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까지 방중했다. 미·중은 작년 미하원의장의 대만방문(2022. 8. 2 ~ 3) 이후로 끊긴 핫라인을 복원하고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방미와 북핵 문제 협의도 시작했다. 북·미대화의 재개 여지가 생긴 것이다. 최근 월북한 미군병사(7. 21)의 처리과정에서도 북·미 대화는 필요해졌다. 특히 미국은 내년이 대선 레이스 기간이고 한반도에서 마찰의 소음이 들리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북·일 관계에서도 대화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총리는 G7 회담 직후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정식 제의(5. 27)했고, 북한 외무성 부상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5. 29)했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계획(5. 31 ~ 6. 11, 실제발사 5. 31)을 국제해사기구(IMO) 외에 일본에만 사전 통보(5. 30)한 것도 주목을 끈다. 최근에는 일본 총리 직속으로 고위급회담 준비팀이 꾸려졌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단초들을 모자이크해 보면,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와 함께 전반적으로 ‘외교의 시간’으로 항로변침을 하지 않겠느냐 예견해 볼 만하다. 우리 외교가 국제질서의 신냉전 전환에 대비해서 가치외교를 내세우고 질주해 왔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흐름이 대화국면으로 전개될 때에도 대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인한 한반도 전쟁불사 분위기에서 우리는‘핵 가진 자와 손잡지 않겠다’며 대북 강경자세를 고집하다 북·미 제네바합의(94. 10. 21)로 정세가 급변하는 바람에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회담에는 참가하지도 못하고 경수로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한 적이 있었다. 우리 외교는 유동적 상황에서 외교 옵션의 고갈이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위태롭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외교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기 어렵게 하는 장애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커지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다름 아니라 우리 정치가 외교 문제를 정쟁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외교에서 실용적 태도가 사라지고 이념적 극단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은 이미 우리 정치문화에 고질화 되어 있다. 거기에 더해 외교노선에 대한 정쟁은 국민들을 친중반일과 친일반중으로 갈라치면서 남남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외교에서 국제공조나 민족공조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여야공조다. 여야가 정권교체를 위해 경쟁을 하더라도 외교 측면에서 정권교체의 의미는 전임 정부의 외교 결과를 부정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공과와 책임을 이어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외교는 ‘이어달리기’다. 정권교체가 되어도 차기 정부가 책임 있게 외교를 이어가려면 여야공조는 필수다.
여야공조를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먼저 야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야 영수회담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급선무이다. 국제공조든 여야공조든 최종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전상태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면 외교에서의 여야공조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다.
- #평화
- #평화체제
- #정전 70년
- #디리스킹
- #신냉전
- #여야공조
- #미전략핵잠수함
이전글
다음글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신고사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