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진단 314호
다가오는 외교의 시간, 어떻게 맞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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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3-10-09
다가오는 외교의 시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남북한이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주변 국가들은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 중러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아졌고 푸틴의 방북도 예견되며,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접촉 소식도 들린다. 우리의 경제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라도 국익 우선의 외교가 중요해졌다. 국제정세와 관련국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변화의 파고에 능동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한다. 가치와 명분에 얽매여 20세기 초·중반을 불행하게 보냈던 민족사를 성찰해볼 때다.
예고되는 치열한 외교전
대결과 충돌로 일관해 오던 국제관계가 외교전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11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6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만일 회담이 성사되면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1년만이다.
그동안 미-중 관계를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은 미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비롯해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이 잇달아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몰타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10월 10일 중국을 방문하는 미국의 여야 상원의원 대표단이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 대표단을 이끄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로 꼽힌다.
러시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이후 중국 방문을 타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방러 직후 왕이 외교부장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높이 평가하고 적극 지지한다”면서 “이를 왜곡하고 먹칠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고 9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밝혔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10월에 열리는 일대일로 구상 10주년 행사 포럼에 참석해 달라는 중국의 요청을 수락했다. 조만간 중국 베이징에서 중-러 정상회담 개최가 유력시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방문도 수락함에 따라 11월 중에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도 예견된다.
한편 2019년 중국 청두(成都) 회담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연내에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3개국 고위급 회담(SOM)이 9월 26일 서울에서 개최됐다. 이 회담에서 향후 수개월 내에 3국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편리한 시기에 정상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소통을 지속하기로 했다. 중국 매체들이 한·중·일 협력이 지역 안정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중국은 3국 정상회담 개최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4년 만에 개최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남북한의 극한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하겠다는 결의를 (북한에게) 전달”하겠다며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내 직할 고위급 협의를 실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북·일 양국 관계자들이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 동남아에서 비밀접촉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아직 북한이 구체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 가운데 지난 10월 5일 유엔총회 제1위원회 본회의 일반토의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 일본의 군비증강을 놓고 일본과 북한 대표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북·일간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 정부는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국내 정치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는 점에 이해를 표하면서도 한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경 대결로 일관하는 남북한
동북아 지역에서 활발한 외교전이 예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극렬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9월 26일과 27일 이틀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 회의를 개최하고 ‘핵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그 배경에 대해 “국가주권과 영토 완정, 인민의 권익을 옹호하며 모든 위협으로부터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사수하고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강력한 군력으로 담보하는데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설에서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핵 타격수단들의 다종화를 실현하며 여러 군종에 실전배비하는 사업을 강력히 실행”할 것을 주문했다.
러시아와는 무기거래 확대를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매체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는 10월 5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두만강역에 73량의 화물열차가 연결된 모습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운송상자와 컨테이너 및 장비를 방수포로 덮었기 때문에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러시아에 대한 무기와 군수품 공급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미국 CBS는 익명의 미국 정부 당국자 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러시아에 대포를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고, 유럽연합의 피터 스타노 대변인은 “북한 기관과 러시아 정부 또는 민간 군수기업 간의 어떤 무기거래도 러시아가 공동 작성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논평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올인(All in)하는 듯하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선수단이 한국에 보인 태도는 북한의 최근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선수단을 애써 외면하며, 한국을 ‘괴뢰’라고 표현하고, 북한이 아니라 ‘조선(DPRK)’이라고 표현하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최근 중국 베이징의 북한 식당 옥류관에서는 한국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도를 넘어서는 듯하다.
한국도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한 한·미·일 정책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9월 26일에는 10년 만에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 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강경한 기념사를 했다. 힘을 기반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북 강경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향후 1년 ‘국익 우선 외교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북한이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주변 국가들은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자국의 국내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2024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도전자인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상회하는 반면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재집권했다면 북핵 문제는 벌써 해결했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북한이 한국을 침공하면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미국인이 2년 전에는 63%였는데 최근에는 50%로 떨어졌다는 미국의 여론조사도 나왔다. 트럼프식의 ‘미국 제일주의’가 미국인들의 여론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빌 클린턴 후보 진영의 슬로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되새겨 본다. 미-중 대결에서 미국의 대중국 입장도 신냉전을 뜻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대신에 전략경쟁을 의미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바뀌었다. 중국과의 전략경쟁이 장기전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경제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중국이 경착륙하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진하게 깔려 있다.
중국도 문제는 경제다. 미국의 디커플링에 대응해서 내놓은 정책이 ‘쌍순환 전략’이다. 14억의 내수를 기반으로 시장과 기술력을 확보하여 글로벌 벨류체인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중국경제는 정작 내수가 문제다. 중국 경제성장의 중심인 청년들의 실업율은 20% 이상에 달한다. ‘부패와의 전쟁’은 중국 공무원과 민간기업들을 옥죄면서 중국경제를 얼리고 있다. 중국인들의 해외관광을 풀었음에도 아직 싹쓸이 중국 단체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홍콩 전문직의 절반 이상이 5년 내에 홍콩을 떠날 생각을 한다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중국의 부자들은 싱가폴, 일본, 미국 등으로 떠나고 있다. 이른바 ‘북·중·러 동맹’ 강화를 시도하는 러시아나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일 수 있다.
10여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미-중 대결과 진영재편의 과정이 미-중 양국의 국내 문제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3년 11월초 미·중 정상회담부터 미 대선이 있을 2024년 11월까지 적어도 1년 동안 ‘외교의 시간’이 예견되는 이유다. 아직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국제관계의 큰 흐름은 언제나 같은 방향의 작은 움직임들이 누적되어 종내 단층을 만들어내 왔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요즈음 우리 경제도 매우 어렵다. 강경과 대결 일변도의 대북, 대외 전략에서 벗어나 우리의 경제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라도 국익 우선의 외교가 중요해졌다. 마땅히 우리가 앞장서서 ‘외교의 시간’을 형성해 나가야 하겠지만, 이미 큰 흐름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면 ‘불감청 고소원’이다. 국제정세와 관련국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변화의 파고에 능동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한다. 가치와 명분에 얽매여 20세기 초·중반을 불행하게 보냈던 민족사를 성찰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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