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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24호

북·일 정상회담에 대비한 외교를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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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8
등록일
2024-03-16

북·일 정상회담에 대비한 외교를 준비할 때다

지금 동북아에서 2018년에 시작되어 2019년에 중단되었던 평화프로세스가 재현되고 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자리를 바꿔 앉았다는 점이 큰 차이다. 올 여름 동북아 외교가 북·일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한국 외교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는 한민족 공동체의 평화적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놓친다면, 동북아 평화프로세스 속에서 한국이 홀로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북·일 평화프로세스로

지금 동북아에서 2018년에 시작되어 2019년에 중단되었던 평화프로세스가 재현되고 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자리를 바꿔 앉았다는 점이 큰 차이다. 2018년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의향을 밝히면서 열렸다. 이후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와 하노이, 베이징, 다롄,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남북한과 미중러 등 이 지역의 정상들이 숨 가쁘게 회담을 이어갔다. 아베의 일본만이 여기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미국을 통한 아베의 저항은 집요했다.

2018년 신년사로부터 6년이 지나 2024년 1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한 장의 전문이 동북아시아에 해빙의 기운을 일으키고 있다. 새해 벽두에 발생한 일본 노토반도 대지진에 김정은 위원장은 기시다 일본 수상 앞으로 ‘각하’ 호칭을 써가며 위로 전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즉각 반응했다. 1월 6일 하야시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북한이 ‘각하’ 호칭을 쓴 것이나, 일본이 즉각 감사를 표시한 것이나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로전문은 물론 대화 메시지였다. 이에 기시다 수상이 1월 30일 시정방침연설에서 ‘정상회담 의지’를 직접 밝히고, ‘수상 직할의 고위급 협의’로 이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던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날 생각이 있다는 뜻은 몇 차례 밝힌 바 있지만, 이번 시정방침연설에서 밝힌 입장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납치 피해자 문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피해자 가족들이 고령화하고 있어서 시간적 제약이 있다고 밝힌 점, 정상회담을 실현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관할하는 고위급 협의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한 점은 작년의 시정방침연설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특히 ‘수상 직할의 고위급 협의’를 처음 언급한 것은 작년 5월이었고, 이를 다시 언급한 것이었다.

변화의 기점으로서 2023년 5월

일본 언론에서는 이미 작년 3월과 5월 북·일간에 접촉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시다 수상이 5월 19일 히로시마 G7 회의를 마치고 5월 27일 납치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민대집회에서 ‘수상 직할의 고위급 협의’를 처음 언급하면서 나온 보도다. 이때 나온 대북 메시지의 수준은 그 동안의 문언과 달리 구체적이어서 높은 수준에서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음날엔 일본의 대표적 우익 신문으로 그동안 북·일 교섭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이 생각을 피력했다. 기시다 수상이 움직일 때, 반북여론을 펴며 북·일 교섭을 견제해 왔던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이 이에 지지 가능성을 보였다.

이러한 기시다 수상의 움직임에 북한 측은 1월 29일 박상길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발표하여 “조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리유가 없다”고 화답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북·일 대화를 언급한 것은 2016년 이래 처음이었다. 6월 8일 기시다 수상은 다시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서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상 직할의 고위급 협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납치 일본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에 북한은 6월 28일 다시 담화를 발표하여 납치 문제 해결 요구를 ‘허망한 망상’이라고 일축하고, 이 문제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이 최종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해결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29일 납치 일본인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고” 정상회담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납치 문제를 넘어서겠다는 일본의 의지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기시다 수상은 2021년 10월 취임 직후 “조건 없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힌 이래 지속적으로 이러한 뜻을 표명해 왔다. 2022년 9월 유엔 총회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기시다 수상은 전제 조건 없이 북한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리고 2023년 9월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도 같은 입장을 표명하였다. 기시다 수상은 2023년 11월 26일에도 모든 납치피해자의 즉시 일괄 귀국을 요구하는 국민대집회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 노력에 더해 일본의 ‘주동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나갈 필요’를 언급했다.

올해 초부터 전개되는 북·일관계의 새로운 양상이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방불케 하는 것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래 보여 온 일관된 대화 노력과 기시다 수상의 자세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상대방의 일관된 대화 자세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점에서 북한 또한 일관된 모습이다.

2월 15일 김여정 담화의 독해

지난 1월 말의 시정방침연설에 이어서 2월 9일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기시다 수상은 작년 11월 말에 피력했던 생각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대담하게 현실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그 스스로 “주동적으로 나서, 정상끼리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명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2월 15일의 김여정 담화는 기시다 수상이 작년 5월부터 발신하고 있는 일련의 발언에 주목하여 화답한 것이었다. 이에 더해 김여정 담화는 일본의 국내 분위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일본 언론들이 조·일 관계 문제에 대해 종전과는 다른 립장을 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 데 대해서도 유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시다 수상이 “과거가 아니라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현명성과 전략적 안목, 그리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의지와 실행력을 가진 정치가”라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력사를 바꿀 수 있다”며,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수도 있을 것”이라고 운을 띄웠던 것이다. 이는 2019년 11월 송일호 북·일수교담당대사가 아베를 ‘보기 드문 기형아’라고 비난하며 “영원히 평양문턱을 넘어설 꿈조차 꾸지 말라”고 했던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북한은 기시다 수상이 아베 전 수상과 다른 사람인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정상회담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김여정의 담화를 한국-쿠바 수교에 대한 맞대응 정도로 평가하는 것은, 지난 1년 동안 전개된 북·일 관계를 전혀 추적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한국 정부의 예상을 넘어 행동하고 있는 기시다 수상과 이에 화답하는 북한의 대담한 행보를 애써 폄훼하는 단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실시하고 수교로 나아가려면 아베 전 수상이 세워 놓은 ‘납치 3원칙’을 극복해야 한다. ‘납치 3원칙’이란 첫째 납치문제가 일본 외교의 최중요 과제라는 것, 둘째 납치문제 해결 없이 수교는 없다는 것, 셋째 납치 문제 해결이란 모든 납치 피해자의 일괄 즉시 귀국이라는 것 등이다. 특히 세 번째 원칙이 문제다.

그런데 아베의 죽음 이후 ‘납치 3원칙’이 발휘해 왔던 강력한 자장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아베파가 직격탄을 맞고 구심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아베 스스로 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묻힌 이야기였지만, 2019년 5월, 아베 전 수상이 『산케이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납치 문제 해결이 북·일평양선언에 입각한 국교정상화를 입구로 해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납치 3원칙’을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정체되고 일본이 북·일 관계 개선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미완의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이제 ‘납치 3원칙’을 극복하기 위해 동의를 얻어야 할 대상은 피해자 가족들뿐이다.

김여정 담화를 받아, 피해자 가족회 대표인 요코타 다쿠야(横田拓也)는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환영한다는 기본 입장을 밝히면서도 납치 문제를 이미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북한의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3월 4일, 피해자 가족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모임인 ‘구출회’는 운동방침의 전환을 확인하고 이를 기시다 수상에 전달했다. 모든 납치 피해자의 즉시 일괄 귀환이라는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이를 위해 일본이 독자적으로 실시해 온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방침이었다. 즉 ‘수단’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유연한 대북접근을 수용한다는 입장이었다. 목표를 내리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을 먼저 실시하는 것도 지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납치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북한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던 ‘구출회’ 그룹도 정상회담에 나서는 기시다 수상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구출회’ 대표이자 국가기본문제연구소 기획위원이기도 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는 2월 15일 김여정 담화를 일본의 언론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기시다 수상이 담화를 적극 수용하여 정상회담을 통한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방향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납치문제 해결 없이 정상회담 반대라는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특히 니시오카가 주목한 것은 김여정 담화에서 ‘만’이라는 조사가 가지는 의미였다. 즉 김여정 담화의 핵심은 납치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삼지만 않는다면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른바 투트랙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 4일의 면담에서 니시오카 대표가 기시다 수상에게 변화된 운동방침을 전달하자, 수상은 “자신이 선두에 서서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니시오카는 자신이 “부디 힘써달라고 부탁”하자, 기시다 수상이 “강한 눈빛으로 대답해 주었다”고 전하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밖에 고이즈미 수상과 김정일 위원장의 북·일 정상회담에 수행하며 북·일 교섭에 가장 오래 관여해 온 일본 외무성의 전 브루나이 대사 야마모토 에이지(山本栄二)나 아베 내각 하에서 스톡홀름 합의를 이끌어 냈던 이이지마 이사오(飯島勲)가 작년 5월의 기시다 수상의 각오를 듣고 이를 돕기 위해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조언을 내놓으며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북·일 교섭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했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가 2022년(한국어판 2023년)에 출판한 『북·일 교섭 30년』도 기시다 수상에게 참고할 지침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핵심 메시지는 ‘아베 납치 3원칙’을 극복하지 않는 한 전후 국가 일본의 국가적 과제로서 북·일 수교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경고다.

북·일 대화를 지지하는 미국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 정부가 또 하나 신경 써야 할 대상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응도 긍정적이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중 사이에 제3의 전선이 열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도 동북아시아에서 현상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나서서 해준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기시다 수상 방한설이 나왔던 2월 14일, 북·일 회담 가능성에 대해 줄리 터너 북한인권특사가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김여정 담화가 나오자 미국은 즉각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련의 메시지를 내 놓았다. 16일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 고위 관리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어떤 종류의 외교와 대화도 지지한다”면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도 “미국 뿐 아니라 동맹들의 대북 관여는 지지할 일”이라고 하여,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과 긴밀한 공조와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표명했다.

2월 21일에는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방한하여 서울에 오기 직전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의 납치 현장에 다녀온 소회를 밝히면서, 한미일이 협력해서 이산가족을 도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날 국회에서 한덕수 총리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답하면서 북·일간 만남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확인하고, “북한이 좀 더 개방이 되고 또 국제사회와 접촉을 갖고 하는 것은 우리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피력했다. 북·일 정상회담은 “일본이 결정할 일”이며, 이와 관련해서 “일본 측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혼란 속에 있는 우리 정부의 대응

그런 가운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 보인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2월 9일 보도된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신을 이행하는 일환으로 북한 인권문제에서 한일이 연대할 것이라며, 일본인 납북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일본 정부와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발언이 보도된 것은 김여정 담화에서 북한이 주목한 기시다 수상의 중의원 예산위원회 발언이 나온 날이었다. 일본의 대북 접근에 공조하여 대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의 기준을 제시하여 북·일 관계에 개입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였다.

북한 김여정 담화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2월 14일, 기시다 수상 방한 이야기가 일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개막식에 참가하는 것으로 셔틀외교 복원의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지만, 그렇게 한가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북·일 교섭의 경위를 설명하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측의 이해를 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한국 총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방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무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전개는 일본과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이 아직 확립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북 강경 일변도정책과 대일 화해 일변도정책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혼란 속에 있는 것 같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김여정 담화가 나온 다음 날인 16일, 아리랑TV와의 인터뷰에서 김여정 담화가 한국-쿠바 수교 발표로 수세에 몰린 북한이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 것이라는 인식을 보이면서 “북한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 워싱턴과 도쿄로 절대로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같은 날 하야시 관방장관은 김여정 담화에 ‘유의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25일 KBS 일요진단에서 김영호 장관의 발언은 열흘 전의 태도와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는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일본과 미국 등 북한이 다른 나라와 대화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북·일간의 대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위에 지적한 것처럼 미국 측이 북·일 대화를 환영하는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납치자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정상회담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것 같다. 북한이 일본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납치 문제 해법을 내 놓을 가능성이 낮아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스포츠외교라는 전통적인 방법

정부 사이에서 외교관계가 없을 때, 종종 스포츠는 외교를 대신한다. 현재 북·일 간에는 축구를 통한 스포츠 외교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으로 현재 북한-일본전이 펼쳐지고 있는데 3월 21일 도쿄에서 1차전이 26일 평양에서 2차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일본이 북한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2011년 11월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이래 13년만의 일이다.

파리올림픽 여자 축구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도 북한과 일본은 맞붙었었는데, 2월 24일의 첫 경기를 북한에서 개최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항공편 운항이 없는 문제 등을 이유로 제3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던 바 있다. 2월 28일의 2차전은 도쿄에서 개최되었고, 북한이 비록 지긴 했지만 오랜만에 일본에서 개최되는 북한 국가대표팀 경기에 조총련 동포들이 매우 고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외에서 북·일 교섭이 활발히 전개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최근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렸던 20세 미만 여자 축구 아시안컵에서도 북한과 일본은 1차 리그 최종 예선과 결승에서 맞붙었다.

이처럼 축구를 통해 국민적인 교류가 재개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초당파 국회의원들이 움직였다. ‘일조국교정상화추진의원연맹(회장, 에토 세이시로[衛藤征士郎])’이 2월 27일 국회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북한의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기시다 수상의 조기방북을 요청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원안에서는 최근의 북한 메시지를 받아 ’북한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었으나 출석 의원들의 이견 제시로 대폭 수정한 내용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날의 모임을 통해 일본 정계가 전체적으로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토 회장은 도쿄에서 개최되는 북·일 여자축구 대표팀 경기를 앞두고 한껏 고양되어 있던 조총련 간부들을 면회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 외교가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2월 26일 독일이 코로나 이후 철수했던 평양주재 공관으로 복귀했으며, 스웨덴이 복귀를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고, 스위스, 영국, 폴란드도 방북 계획을 조율중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정부의 대북 창구인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는 폐지되었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북·일관계의 변화와 그 의미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시다 수상과 김정은 위원장의 계산, 우리의 전략적 계산은?

일본 국내정치를 바라보면서 북·일 정상회담을 전망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20퍼센트 안팎에서 정체된 상황에서 북·일 정상회담 말고 지지율을 일거에 끌어 올릴만한 ‘수’가 없다는 것이 그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시다 수상은 고이즈미 방북 때 내각 지지율이 하루에 15퍼센트 포인트 상승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고이즈미 수상이 김정일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이 고이즈미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일본이 보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9월 13일 북러 정상회담 이후 외교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평양의 외교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과 교역 부활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북한의 경제와 식량사정도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점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그가 고양되어 있을 때가 북·일 간에서 성과를 낼 기회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일본 측은 북한에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희토류를 염두에 두고, 경제안보면에서도 장기적으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북·일수교의 잇점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다시 고립주의로 돌아 설 때를 대비한 전략을 생각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물러간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공백에서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한반도 사태를 관리하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실패로부터 학습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미 협상이 실패한 것은 한국 이외의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 특히 일본의 방해가 큰 실패요인이었다고 보고, 우선 북·일 관계 정지작업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더구나 트럼프 재선이 점쳐지는 가운데, 트럼프와의 북미협상 2,0을 시도할 때 일본이 지지해 줄 것, 적어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 요구된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 입장에서 가장 큰 유인은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 가능성이다. 북한이 기대하는 것은 그 양보다도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의미 없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외교 일정에서 볼 때, 푸틴 방북이 예상되는 5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정치일정에서 보면, 북·일 정상회담을 실적으로 자민당 총재선에 임한다는 방침이라면 총재선이 실시되는 9월 이전에는 실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6월, 또는 7월이 유력하며, 늦어도 8월 중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올 여름 동북아 외교가 북·일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한국 외교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는 한민족 공동체의 평화적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여 이를 놓친다면, 북한과 일본이 주도하는 동북아 평화프로세스 속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정상들이 평양 봄나들이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한국이 홀로 두꺼운 겨울외투를 입고 외톨이가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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