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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Foundation 평화재단

현안진단 325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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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4
등록일
2024-03-21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

지금 동북아에서 2018년에 시작되어 2019년에 중단되었던 평화프로세스가 재현되고 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자리를 바꿔 앉았다는 점이 큰 차이다. 올 여름 동북아 외교가 북·일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한국 외교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는 한민족 공동체의 평화적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놓친다면, 동북아 평화프로세스 속에서 한국이 홀로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통일구상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2국가론과 통일·민족 개념 폐기 선언의 파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와 관계없이 통일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주목할 부분은 윤석열 정부가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새로운 통일구상을 공개할 계획이라는 것과, 정부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보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통일구상 모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일부는 지난해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정부의 통일정책 방향을 담은 ‘신통일미래구상’을 마련해 2023년 연말에 발표하겠다고 보고했다. 5월 3일에는 당시 권영세 장관이 참석한 원탁회의에서 통일미래기획위원회가 마련한 ‘신통일미래구상’ 초안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부가 예고했던 지난해 연말까지도 ‘신통일미래구상’은 발표되지 못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올해 2월 2일 북한의 통일 포기 선언에 대해 “평화통일을 추진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30주년을 맞는 올해 새 통일구상을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장관은 남북관계 상황 변화와 국제정세에 맞게 “헌법적 가치를 더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방안으로 통일방안이 새롭게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통일을 여덟 번 언급했으며, 대통령실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자유주의적 철학 비전이 누락되었다며 새로운 통일관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에 대한 수정·보완의 주요 방향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 철학·비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소식통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보완 방향에 관해 큰 틀에서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장 하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녹여 넣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국민 의견 수렴 결과에 따라 명칭 변경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발표 이후 30년 만에 변화의 문턱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3월 8일 통일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 한 명, 한 명의 자유를 확대하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영호 장관은 우리의 통일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시점이라며, 자유주의 철학을 반영한 새로운 통일구상을 마련하겠다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새로운 통일구상에 담길 내용에 대한 질문에서도 북핵 문제, 북한 인권상황, 국제정세의 변화를 반영해 “자유주의 철학이 담긴 새로운 통일구상을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보완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김 장관은 3월 13일 새로운 통일구상을 위한 신 통일담론 수립 1차 회의를 시작으로 각층의 의견 수렴에 나섰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자유민주주의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후 줄곧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해 왔으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수정·보완의 이유로 내세운 점도 동일하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영문판의 경우 ‘인류보편적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 항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liberal democracy로 번역했다. liberal democracy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논쟁적 개념이지만 특정 정치체제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다양한 조합을 대표하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헌법은 통일의 방향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립 당시부터 자유 민주주의 정신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헌법과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강조하는 것은 특정한 정치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보편 가치로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남북한 간 차이는 물론 우리 사회 내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하는 복합적 과정이라는 점에서 통일의 최종 형태에 대해 개방성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와 헌법과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자유 민주주의 정신’의 개념적 차이가 크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1994년 8월 광복절 49주년 기념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통일을 추진하는 기본철학의 핵심이 ‘자유와 민주’이며, “자유 없는 민주가 있을 수 없고, 민주 없이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민주주의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민족의 자주적 역량으로 냉전과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통일은 계급이나 집단중심의 이념보다도 인간중심의 자유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대통령의 언급은 공산주의 독재를 제외한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 체제가 통일의 최종 형태가 되어야 함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대통령이 언급한 자유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체제가 아닌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조합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문판 헌법은 이에 대해 ‘the free and democratic order’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역시 특정한 정치체제가 아닌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다양한 체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군사분계선(MDL)을 북한 국경선으로 규정한 김정은 위원장의 선언과 달리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 최상위 법전이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추진의 좌표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통일부는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실현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부처라는 인식을 우선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3조와 제4조에 이미 한반도 영토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명시되어 있는 상황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수정·보완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자문할 일이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재인식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기초로 김영삼 정부가 수립한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여야 합의로 채택되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30여 년간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역대 모든 대한민국 정부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해 왔다. 일부 정권에서 새로운 통일구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자체의 수정·보완에 나서지는 않았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항은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해 전면 부정하지 아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한민족이 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을 담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합의는 물론 북한도 유효성·현실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을 하나의 국가로 인식하는 우리 헌법과 국제법상 각각 독립적 유엔 가입국으로서 별개의 국가인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광복 49주년 기념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에서 반목과 불신을 쌓아온 남북이 하루아침에 통일을 이룰 수 없다며, 통일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야 간 대립적 정치구도와 시민사회의 분열이라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특정 정권의 성향이 반영되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보완이 이루어질 경우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통일은 개개인의 일상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민족적 대사라는 점에서 통일방안을 특정 세력이 배타적으로 주도하기 어렵고 또 시도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절차든 내용이든 어느 경우든 통일문제는 국민적 합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시도했던 통일헌장 제정과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통일국민협약 모두 용두사미로 끝났으며, 실질적 성과가 도출되지 못했다는 점을 직시할 일이다.

30년간 유지되어 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봉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소모적인 새로운 국론분열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수정·보완할 경우 이는 선례로 남게 되며, 결국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각 정권의 입맛대로 정부의 통일방안 수정·보완이 시도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우리가 합의한 통일법전으로서 권위를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

김정은 정권의 통일·민족 개념 폐기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한반도 유일의 평화통일 방안으로 남게 되었다.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보완에 집착할 일이 아니다. 헌법정신에 입각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당당하고 차분하게 이행할 일이며, 김정은 정권의 반역사적인 반통일·반민족 인식에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일과 민족 개념은 특정 정권이 폐기를 선언할 대상이 아니며, 김정은 정권의 선택은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통일과 민족 개념은 김일성·김정일 정권을 관통해온 정치적 명분이었으며,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정치의식을 지배해온 핵심 가치였다. 통일과 민족을 거부한 김정은 정권과 달리 북한 주민은 통일의 동반자이며, 미래 한반도 통일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전시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김정은 정권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 김정은 정권의 2국가론은 전쟁상태의 상시화를 의미하며, 핵전쟁의 위협 아래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정은 정권의 인식을 교정해 평화통일의 길에 나서도록 설득·견인하고, 북한 주민에게도 우리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인류역사를 관통한 보편 가치라는 점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지향하는 통일국가의 최종 형태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보편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형태가 아닌 인류 보편 가치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체제가 특정한 형태에 국한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실현을 위해 우보천리의 길을 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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